emic, etic, 노자, 그리고 미래학

얼마 전, 한국서 손님이 오셨습니다.
행정학을 전공하신 분이었는데, 오셔서 미래학 교수님, 학생들을 두루 만나고 가셨습니다.
한국의 한 연구소와 하와이 미래학연구소와 협력 가능성을 타진하기 위해 오셨죠.
저는 그 분과 짧은 만남이었지만, 좋은 배움을 얻었습니다.
그분이 개인 아이디로 쓰시는 Emic, Etic이란 단어의 뜻을 배웠는데요.
많은 분들이 아시겠지만,
Emic은 Culture-specific (내부 관점)이고,
Etic은 Culturally-neutral (외부 시각)입니다.
이 개념은 인류학, 사회학, 비교문화학 등에서 주요한 키워드로 쓰고 있습니다.
좀더 관련자료를 찾아보니,
미국인 인류학자이자 언어학자인 Kenneth Pike가 고안해낸 개념이군요.
Emic은 Phonemics(음소론)에서 왔고, Etic은 Phonetics(음성론)에서 왔습니다.
언어학은 잘 모르지만, 상식적으로 볼 때...
음소론은 자음과 모음 등 기본적인 음의 원소들을 다루는 것이므로,
현지인들의 관점을 반영하는 것이고...
음성론은 말소리를 분석하는 것이므로,
그 음을 듣는 외부인들의 시각을 반영하게 됩니다.
이걸 두고 "이밐"은 주관적, "에틱"은 객관적이라고 분류하기도 합니다.

이 단어를 소개해주신 분은 "내부 관점"과 "외부 시각"의 균형을 유지해야,
한 사회의 실체를 알 수 있다고 하십니다.
한 사회의 특징을 다른 사회와 비교하면서 일반화, 보편화 할 때...
다양한 관점에서 그 특징을 이해할 수 있고,
보편적인 것을 어느 사회의 특징에 대입할 때...
그 보편적 틀이 넓어지거나, 수정될 수 있습니다.
이 것이 반복되면서 서로 잘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저는 이 말이 노자의 한 구절과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古之善爲士者 微妙玄通 深不可識 夫唯不可識 故强爲之容 豫焉若冬涉川
(옛날에 도를 얻은 이는 미묘하고 그윽히 통달했으니, 깊이를 알 수 없었다.
알 수 없으므로 억지로 형용하자면 마치 겨울에 개울을 건널 때 머뭇거리는 것과 같고...)
<임채우 옮김, 왕필의 노자주, 한길사, 90쪽>
이를 왕필은,
"겨울에 개울을 건널 때 망설이면서 건너려는 것 같기도 하고,
건너지 않으려는 것 같기도 하여, 그 사정을 알 수 없는 모습"이라고 주석을 달았습니다.

진리의 값을 알아낼 수 있다면, 그건 개울을 건너기 직전 망설이는 마음을 가졌을 때라고 생각합니다. 외부의 시각과 내부의 관점이 처음으로 만나는 순간, 그러니까...두 시각이 처음으로 부딪히는 바로 그 찰라가 진리의 모습을 살짝 드러내는 순간이라고 할까요....

모두들, 두 시각의 균형을 요구하고, 또 그렇게 해야 한다는 데 이견이 없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어떻게 균형을 유지하는가, 혹은 어떻게 두 시각을 적절히 버무릴 것이냐 하는 질문에는 대답을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혹, 두 시각의 균형을 유지하는 방법을 아시는 분은 가르쳐 주세요...)

제 생각으로, 미래학은 이 부분을 가능하게 합니다...
균형 감각을 유지하려면, 가장 중요한 것이 나의 이해관계를 초월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내가 특정한 이해관계를 고집하면, 나의 발전에 중요한 정보를 놓칠 위험이 있습니다.
내가 받아들이기 싫은 정보라도, 나에게 끊임없이 들어올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내가 좋아하든, 좋아하지 않든, 모든 정보는 네 가지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1) 모든 상황은 점점 더 좋아질 거야!
2) 천만에! 곧 붕괴될 걸...
3) 글쎄, 헤쳐나갈 방법이 있지 않을까?
4) 난, 조만간 새로운 세계가 도래할 것 같은 예감이야?!

이 네 가지 범주에서 벗어나는 정보가 있다면, 알려주세요...
미래는 이 네 가지 범주로부터 옵니다...
물론 한 사회엔 네 가지 상황이 동시에, 버무려진 채 벌어지고 있습니다.

중요한 건,
이 네 가지 정보를 끊임없이 의식하고 있어야,
내 관점과 외부 시각의 균형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인데요...
이런 점에서 보면 미래학은 철학에 가깝습니다.
배움의 과정을 제공한다는 측면에선 교육학과 친합니다.
여기에 윤리학적 성격이 가미되면, 하와이주립대 미래학의 특성이 됩니다.

내부과 외부의 시각을 적절하게 유지하는 이유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줄이고, 현재에 대해 적극적으로 개입하기 위해서라고 봅니다만...

어떻게 생각하시오, 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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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ohnul

2008/12/24 13:14 2008/12/24 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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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한빛 2008/12/27 20:51 # M/D Reply Permalink

    협력이 어떠한 방향으로 결과되든
    긍정적인 쪽으로 이어졌으면 좋겠습니다~

    글을 보는 동안 두 가지 장면이 끊임없이 오버랩되네요.
    금속판 위에서 음악과 함께 펼쳐지는 모래알 무늬.
    홀로그램을 통해 대화를 나누는 두 사람.
    빛의 파동을 통해 정보를 주고받는 두 사람.
    금속판에 전달되는 파동을 통해 정보를 주고받아 절서정연한 변화를 일으키는 cosmos.

    내부과 외부의 시각을 적절하게 유지하는 이유에 대한 미래도둑님의 관점에 공감합니다. 적극적으로 개입함으로써 상호작용할 수 있는 영역을 늘려갈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금속판 위의 모래알들처럼 내부, 외부시각(파동)의 차이를 주고받는 것만으로 내부 성질의 본질적 변화가 이루어질것이라 봅니다. 차이를 주고받으며 스스로를 변화시켜 조화를 이루고, 조화를 이룸으로써 두 시각의 틈바구니에서 새로운 시각이 잉태되어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가겠지요.

    다른 한 편으로, 두 시각이 적절히 유지되는 것은 문명의 발달과 그것을 수용할 수 있는 정신적 성숙의 균형이 깨어지지 않도록 해주는 신의 안전장치 같은 것이 아닌가 상상해 봅니다. 급격한 차이와 단절은 서로를 점차 도태시키고 끝내는 절멸시킬 무서운 무기가 될 수 있습니다. 살아남아서 미래를 두려워하지 않고 활발하게 현실을 만들어가는 것은 인류 뿐만 아니라 인류를 지켜보고 있을지 모르는 그 누군가에게도 즐거움일 것입니다. 머지않아서 "계속 살아 남아서 서로 즐거이 공명해보세"하는 신(혹은 그 누군가)의 메세지를 dna 한 귀퉁이에서 발견하게 될지 모르는 일입니다.

    인류가 비록 우주문명권에서 알아주는 탑클래스 대학에 입학은 했지만 F학점이 너무 많으면 교수의 미움을 받아 학교에서 쫓겨날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ㅎ 이번 재수강을 마지막으로 조화롭게 발전할 수 있는 모델을 제시하지 못한다면 직접면담 시간이 찾아올 수도 있겠지요.
    발전 모델과 방법론 제시를 위해서는 글에서 말씀해주신 미래학의 주도적인 역할이 필요합니다.


    제 지식이 짧은 관계로 댓글이 너무 뚱뚱해졌음을 너그러이 봐주시기를.
    언젠가는 늘씬하고 보기좋게 될 날이 오겠지요 :)
    미래도둑님께 무한지지를 보내는 후학으로부터.

    1. 미래도둑 2008/12/30 11:31 # M/D Permalink

      한빛님, 좋은 댓글 감사드리옵고. 인류가 신과 직접 면담할 시간이 온다는 표현이 아주 재밌습니다. 서구에선 지구최후의 날 쯤으로 묘사할 텐데, 면담시간이라고 하니...오히려 그 시간이 기다려집니다. 그나저나, 준비는 잘 되갑니까?

    2. 한빛 2009/01/01 22:52 # M/D Permalink

      미리미리 해두었어야 하는데
      인생에 중요한 몇 가지 사건들이
      동시에 겹치다보니 글 작업보다
      주변과의 관계를 풀어가는데 더 시간이 걸리네요 ^^;
      그래도 숨 쉴 시간만 빼고는 즐겁게 준비하고 있습니다.
      관심 가져주시고 도와주심이 큰 힘이 됩니다.
      수 일내로 메일 드리겠습니다.

      달력을 보니 2008년도 이제 하루가 남았네요.
      뜻하신 바 의미있게 이루신 한 해 보내셨는지 궁금합니다.
      새해에도 밝고 큰 원, 행복하게 키워가셨으면 합니다.

  2. Here 2008/12/30 08:36 # M/D Reply Permalink

    내일 일어날 일을 예측하기 위해 이런 저런 생각을 할 때가 있습니다.
    오늘까지 이미 일어난 일들을 되새겨 보고 있음직한 관련 상황정보들을
    최대한 많이 꺼집어 내어 연관지어 이성적으로 생각을 해보고 판단을 하게 되지요
    꽤 만족할만한 수준까지 내일 전개될 모습에 대해 시뮬레이션을 하는 과정에서
    내가 잘 알고 있고 확신할 수 있는 생각(내부의 관점)과
    내가 잘 몰라서 어떻게 전개될지 걱정스러운 조건들(외부의 관점)을
    이리저리 꿰 맞추는 작업들이 벌어지지만,
    예측된 결과의 신뢰도는 한 80% ~ 90% 쯤 될까요?
    아직은 '완벽한 내일'의 예측에 이르렀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나머지 10% ~ 20% 정도의 부족한 신뢰도를 채우는 나름대로의 방식은
    의식적으로 생각해 본 내일의 모습에 관해 꿈을 꾸는 것입니다.
    이런 경우 10중 팔구는 자기 전에 필요하다고 생각한 꿈을 꾸게 됩니다

    꿈을 꾸고 깨기 직전의 순간은
    꿈을 꾼 주체인 내부의식(또는 잠재의식)과
    해몽하는 주체인 외부의식이 교차하는 순간으로
    비몽사몽간에 직관력이 발동하는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의도적인 사념이 없이 순수하게 스쳐지나가는 듯한 짧은 이 순간에
    꿈의 내용을 되새기면서 직관적으로 떠 오르는 해몽의 내용과
    자기 전에 의식적으로 생각해 본 내일의 예측 내용을 교차시킬 수 있습니다.

    직관에 의한 해몽은 의식적으로 예측한 내일의 모습을 수정 보완하는 역할을
    하게 되고, 부족한 10%~20%의 신뢰도를 높일 수 있게 됩니다.

    외부의식과 내부의식이 직관을 통해 교감하는 가운데 드러나는
    내일의 모습은 거의 그대로 현실로 드러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1. 미래도둑 2008/12/30 11:35 # M/D Permalink

      Here님, 꿈이 내부와 외부의 관점이 만나는 순간이라고 하시니...참으로 맞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Y원장님이 잘 자는 게 중요하다고 하시는 군요! 또 국내 굴지기업 L회장님은 비몽사몽간에 수조원의 투자를 결정한다고 하시던데(믿거나 말거나)...이걸 어떻게 학문의 영역을 끌어올릴 수 있을까요?

  3. Here 2009/01/03 02:41 # M/D Reply Permalink

    꿈을 학문의 영역으로 올리기 위해서는 몇가지 조건을 만족해야 하겠지요
    그 중에서 반복재연성과 보편성이 Key point 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1. 반복재연성 ---> 마음만 먹으면 원하는 꿈을 꿀 수 있는 Process 가 있는가?
    2. 보편성 ---> Process를 제대로 배우고 따라 하면 누구에게나 기능한 일인가?

    제 개인적 경험에 비추어 얘기하자면 ---> 1. Yes 2. Yes ---> 정말 꿈같은 얘기처럼 들리겠지요?

    꿈을 꾸는 매카니즘은 널리 알려진 바 있고,
    누구든지 마음만 먹으면 그리 어렵지 않게 저와 유사한 경험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아직 논문으로 발표한 것이 아니기에 감히 널리 만천하에 주장은 못하고 있다고나 할까요?

    참고: http://blog.naver.com/lszeelee/110035330058

    1. 미래도둑 2009/01/17 06:15 # M/D Permalink

      Here님, 아주 좋은 말씀입니다. 꼽씹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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