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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중훈과 휴그랜트의 차이

잡담잡설 2007/04/09 08:52



며칠 전에 휴 그랜트와 드류 베리 모어가 출연한 영화 '그 여자 작사, 그 남자 작곡'을 보았습니다.
박중훈과 안성기가 나오는 '라디오 스타'와 여러 면에서 비슷한 영화였습니다.
영화에서 박중훈과 휴 그랜트는 왕년에 스타였습니다.
가수왕에 오를 정도로 인기를 누렸으나, 지금은 퇴물이 됐죠.
영화는 둘의 재기에 대해 추적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오만했던 태도를 반성하고 새로운 길을 모색한다는 점에서 비슷합니다.

그러나 결과는 다릅니다.
박중훈은 매니저 안성기와 관계를 복원하는 데 성공합니다.
반면 휴 그랜트는 자신의 노래를 찾아내는 데 성공합니다.

한국이 관계 회복에 매달리는 반면, 미국은 뮤지션으로의 성공에 매달립니다.
박중훈은 끝내 자신의 노래를 불러달라는 요청에 응답하지 않습니다.
반면 휴 그랜트는 자신의 노래를 불러달라는 애인의 요청에 멋지게 응답합니다.

둘의 차이...어디서 연유할까요?
'생각의 지도'라는 책을 쓴 미국의 심리학자 리처드 니스빗은 동양은 상황을 중시하지만 서양은 본성을 중시한다고 분석합니다.
동양인에겐 나를 둘러싼 환경, 관계 등이 중요하지만 서양인은 본질, 자신이 더 중요하다는 거죠.

예컨대 팬더곰, 원숭이, 바나나를 두 개의 카테고리로 묶으라고 하면, 동양인은 대부분 원숭이와 바나나를 한 카테고리로 묶고, 팬더곰을 다른 카테고리로 분리합니다.
반면 서양인은 원숭이와 팬더곰을 한 카테고리로, 바나나를 다른 부류로 분류합니다.
동양인에겐 원숭이와 바나나는 주체와 객체, 자신과 환경 등으로 엮이지만, 서양인에겐 동물과 식물로 분류하는 거죠.

우리에겐 관계가 중요합니다. 라디오 스타에서 박중훈이 매니저와 관계 복원에 매달리는 것처럼.

그러나 앞으로는 달라질 것 같습니다. 한미 FTA를 계기로 미국과 더 친해지기도 했지만, 한국이 좀더 부강하게 된다면 주변과의 관계보다는 자신 안에 감춰진 새로운 능력을 보려는 경향이 세질 것 같아섭니다.

약간 논리의 비약이 있습니다만,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은 채 주변의 관계 회복에 매달린다면...그건 제 생각엔 퇴보를 의미한다고 보입니다.
쑥스럽지만, 자신의 노래를 찾아서 불러야, 그렇게 영화 엔딩이 구성돼야 우리가 앞으로 한 발짝 더 나아갔다고 생각합니다.

라디오 스타라는 영화만 봤을 때는 박중훈의 선택이 옳았다고 봤습니다. 자신을 알아줬던 은인을 다시 발견하는 과정은 감동이었습니다. 중국 '백아와 종자기' 고사처럼 자신의 음악을 알아주는 사람이 있을 때에만 노래하는 것처럼 말이죠.

그러나 그 여자 작사...를 보고 나서는 라디오 스타의 귀결이 후지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박중훈은 자신의 노래를 불렀어야 했다는 아쉬움이 들더군요. 왜 다 산 사람처럼, 마치 뭘 다 깨달았다는 사람처럼 박중훈은 행동했을까요. 왜 다시 한번 젊은 가수들과 어깨싸움을 하며 자신의 노래를 들이밀지 못했을까요.

자신의 문제를, 갈등을 정면으로 바라보는 것, 그리고 그걸 해결하기 위해 뛰는 것. 이럴 때 새로운 음악이 나오고, 디자인이 나오고, 글이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이게 세계 최초이자, 최고의 제품이 될 것이며, 이 제품으로 새로운 부가가치를 만들어 낼 것 같습니다.

왜 박중훈은 자신의 노래를 찾지 못한 채 영화가 끝나야만 했을까요....우린 왜 여기서 멈추는 걸, 멋있는 엔딩이라고 생각하는 걸까요...

***
이건 순전히 제 개인적인 생각인데요.
두 영화를 비교해보면서, 한국의 미래를 슬쩍 엿본 느낌이 들었습니다.
라디오스타에서 주인공은 어쩌면 방송국 피디일 겁니다.
그를 통해서 왕년의 스타의 재기를 가능케했고, 알려지지 않은 그룹 '노 브레인'이 떴죠.
조연들이 많이 등장하지만, 대부분 방송국 사람들입니다.

반면 그 여자...에선 철저하게 가수와 제작자만 나오죠.
요점은 선진국일수록 작품을 만드는 사람이 대접받고, 후진국일수록 작품을 중계하는 사람이 대접받는다는 겁니다.
디자이너, 설계자, 가수, 작가 등이 대접받는 곳이 미국.
피디, 기자, 감리회사, 발주자 등이 대접받는 곳이 한국.
사회가 발전할수록 대접받는 직업이 달라진다는 사실!
프로그래머들 힘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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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Lane 2007/04/09 10:48 PERMALINKMODIFY/DELETE REPLY

    음...
    정말 많은걸 생각하게 해 주시는 글입니다...
    그런데 또 한 편으론 가장 어려운 숙제이기도 하네요...
    모두가 YES라고 할때, 혼자서 NO라고 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한 일이니까요...
    하지만, 제 개인적인 바람이기도 합니다.
    그렇게만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 많이 합니다.
    생각만... (-_-)ㅋ

    • 미래도둑 2007/04/09 19:54 PERMALINKMODIFY/DELETE

      늘 염두에 두고 있다면 언젠간 되지 않을까요? 전 레인님이 '한 건' 할 것으로 굳게 믿습니다, 언제부터인지...

  2. lionheart 2007/04/09 18:35 PERMALINKMODIFY/DELETE REPLY

    읽어본지 3년쯤 된 것 같습니다. '생각의 지도'
    저자의 분석법이 참 재미있고 공감도 많이 했습니다.
    여러가지 원인으로 동,서양 사람 간에 사고방식의 차이가 생기지만, 개인적으로 바람직한 것은 '한 사람'을 문자 그대로 '그 사람'으로 봐주는 문화라고 생각합니다.
    '한 사람'을 떠 올렸을 때, 그 사람외에 배경, 지인, 학벌 등을 떠올리며 결국 배경과 환경의 가치를 '그 사람'과 혼돈하기 시작하는데서 비극은 시작^^되는것 같습니다.
    '연금술사'에서 주인공이 떠나는 여행을 '자아의 신화'를 찾아 떠나는 여행이라 했는데, 맞습니다.
    누구나 '자아의 신화'를 이룰 권리가 있으니까요.

    • 미래도둑 2007/04/09 19:55 PERMALINKMODIFY/DELETE

      '누구나 자아의 신화를 이룰 권리가 있다'는 말씀, 100% 동감합니다. 그나저나 반갑습니다. 친환경적인 사업을 하시는 분으로 알고 있습니다. 사업 번창하시길...

  3. lionheart 2007/04/11 19:08 PERMALINKMODIFY/DELETE REPLY

    인사도 드리지 않고 불쑥 댓글부터 들이댔습니다. --;
    미래도둑님 글은 예전부터 많이 훔쳐(?)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덕분에 번창해야 할 이유가 한 가지 더 생겼습니다.^^

  4. susanna 2007/04/13 17:16 PERMALINKMODIFY/DELETE REPLY

    전 '그여자...'는 안봤지만 재미있는 분석이네요. 잘 봤습니다. 이 글 읽으니 '그여자....'가 보고싶어지는군요. 그나저나 미래도둑님 예측에 따르면 우리는 이제 '지는 직업'이라는 거 아닙니까? 흑흑~~~

  5. 미래도둑 2007/04/15 16:21 PERMALINKMODIFY/DELETE REPLY

    자크 아탈리의 관계론적 시각을 첨가합니다. 그는 한국이 새로워지려면...
    관계 위주의 환경을 조성하고, 운명 공동체에 스스로 편입되기를 욕망하며, 창조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고, 거대한 항구와 대규모 금융시장을 건설하며, 공정한 방식으로 시민에게 새로운 지식을 가르치고, 미래의 신기술을 자기 것으로 만들고, 지정학적인 위치를 확립하고, 필요에 따라 동맹을 맺는 따위에 필요한 법칙에 순응해야 한다고 조언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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