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청이 아니었다. 차갑고 하얀 악령의 숨결을 뿜어내며 나를 쫓아오는 시커먼 개들의 모습이 언뜻 보였다. 미친 듯이 뛰었다. 악령은 내 뒤쪽만이 아니라 앞에도 나타났다. 시커먼 개들. 시뻘건 아가리. 어디를 물렸는지 눈앞이 아찔해졌지만 나는 뛰었다. 아니, 뛰려고 했다. 그러나 더 이상 버틸 수 없었다. 빙그르르 현기증이 도는가 싶더니…. 유체 이탈한 영혼처럼 허공에서, 길바닥에 널브러진 채 여러 마리 개에게 물어뜯기고 있는 나의 주검을 내려다보았다. 나는 죽었다.
죽음을 깨닫는 순간, 짜증을 부리며 마우스를 팽개친다. 그리고 나의 아바타가 초라하게 나뒹굴고 있는 모니터를 바라보며 혀를 찬다. 내가 목도하고 있는 죽음은 게임 속의 죽음, 가짜 죽음이다.
많은 소설과 영화에서 다루어진 가상현실은 감각을 어지럽히는 놀라운 도구들을 통해 기적을 만들어낸다. 그러나 게임 속의 가상현실은 훨씬 더 소박하고 단순하다. 모뎀과 컴퓨터가 전부다. 키보드와 마우스는 내가 그 세계를 향해 보내는 신호를 입력하는 통로이며, 모니터와 스피커는 그 세계가 나를 향해 보내는 신호를 받아들이는 통로다. 동사무소에도, 학교에도, 은행에도 있는 일상 속의 소품인 PC로 다른 세계를 손에 넣는 것이다.
첨단기술이 소설이나 영화 속에서 보았던 것과 같은 가상현실을 점점 현실쪽으로 끌어당기고 있다지만, 지금 당장 내가 소비하고 감각할 수 있는 것은 딱 이 정도의 가상현실이다. 심심치 않게 튀어나오는 중독이니 금단증세니 하는 것이 왜 일어날까 의심스러울 정도로 단순하고 소박한 세계다. 정말이지, 어째서일까.
궁금해 하는 것을 멈추고 숨을 몰아쉰 뒤, 다시 한번 가상현실 속의 여행자로 돌아간다. 출발했던 숲 입구로 돌아왔지만 상황은 암담하다. 여전히 밤이고, 숲에는 그 위험한 유령 개들이 어슬렁거리고 있을 테니까.
또 한번 무모하게 뛰어들었다가는 주검 옆에 주검을 또 늘리는 고약한 경험만 할 뿐이다. 코뿔소처럼 밀어붙이기 좋아했던 어떤 촌뜨기 모험가는 그런 식으로 스무개가 넘는 자기 주검을 같은 자리에 늘어놓았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갈 것인가, 말 것인가. 고민하고 있는 순간 누군가 "헤이"하고 나를 부른다. 처음에는 말을 걸어온 상대를 볼 수가 없었다. 잠시 후에야 상대가 내 키의 절반도 안되는 작달막한 하플링 종족인 것을 깨닫고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그 친구는 내 사정을 듣고 혀를 차더니 마법의 주문을 영창했다. 다음 순간, 모니터에서 내 아바타가 사라졌다. 적의 눈에 띄지 않는 투명 마법을 걸어준 것이다.
하플링은 자기 몸에도 똑같은 마법을 건 뒤, 마법 효과가 사라지기 전에 숲을 빠져나가야 한다며 먼저 달려갔다. 고맙다고 말할 틈도 없이 나는 그 뒤를 서둘러 따라갔다. 유령 개들이 어슬렁거리는 숲길을 투명인간이 되어 지나는 동안 현실의 나 역시 숨을 죽였다. 숲을 지나 꿈에 그리던 대륙 서쪽으로 접어드는 산길 위에 올라서서야 우리 둘의 마법은 풀렸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까마득한 벼랑과 멀리 아득한 지평선을 바라보며 잠시 감상에 취했다. 산꼭대기에 부는 시원한 바람이 목덜미를 쓰는 상상을 은근히 맛보며. 고지를 점령했을 때의 쾌감은 가상도 현실도 다르지 않다.
그 하플링 친구와 나는 대륙 서쪽의 마을에 들려 인연을 기념하는 뜻에서 술이나 한잔 하기로 했다. 게임 속의 술집에 들어가 술병 비슷한 것을 들고 아바타에게 축배 동작을 시키면서 냉장고에 있던 캔 맥주를 들어 현실 속에서 건배를 외치는 것이 '한 잔하는' 방식이다. 술을 마시지 않는 나는 음료수를 마셨지만, 게임 속의 아바타를 이리저리 움직여 취한 흉내를 내는 것만큼은 지지 않았다. 팬터지의 종족들처럼 뾰족한 귀, 짤막한 키를 가진 우리 둘이 마주 앉아서 서로의 직업을 묻고 너희 나라 맥주는 맛있느냐, 한국에는 게임방이 많다는데 너도 게임방이냐, 너희는 인터넷 접속 속도가 어느 정도냐 하는 따위의 대화를 나누는 것은 독특한 재미가 있다.
취하지도 않은 술이 깬 다음, 그 친구와 나는 작별했다. 함께 여행할 생각도 해봤지만 미국 서부에서 사는 그 친구와 나는 활동시간대가 달라 자주 만나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 짧고 우연한 동행은 학창시절 즉흥적인 여행처럼 가볍고 유쾌하게 끝났다. 키가 내 절반밖에 되지 않는 작은 친구는 힘차게 손을 흔들고는 마치 강아지가 뛰듯이, 아니 구르듯이 데굴데굴 저 멀리 사라져갔다.
실제의 그는 어쩌면 어려워 보이는 사람에게 말을 걸고 도움을 줄 만큼 오지랖 넓지 않을지도 모른다. 실제의 그는 키가 장대처럼 크고 걸음은 느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무려면 어떠랴. 나는 실제의 그가 이 가상세계의 하플링을 구속하기를 원치 않듯이, 가상세계의 하플링이 실제의 그를 구속하기도 바라지 않으니까.
아직은 단순하기 그지없는 가상현실이 갖는 매력은 바로 그것이다. 나를 도와준 누구, 또는 나를 괴롭힌 누구와의 우연하고도 계산 없는 관계 맺음. 화려한 그래픽과 실감나는 음향으로 눈과 귀를 사로잡는 것은 극히 짧은 시간뿐, 타인과의 관계로 그 세계에 닻을 내리지 못한다면 환상은 금세 깨지고 만다.
더 이상 그 안의 관계에 집착할 이유가 사라질 때, 숲의 분위기 있는 어둠도 웅장한 산맥의 장엄한 일출도 그저 프로그램 언어의 헐벗은 조합으로 무기력하게 녹아 흘러내리기 시작한다. 그때 가상현실의 여행자는 질주를 멈춘다. 모두 언젠가는 그 세계가 끝날 것임을 안다. 우리의 삶이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처럼.
하지만 그 전까지는, 17인치 모니터 안에 만들어진 산과 저녁 하늘에 감탄하고 두개의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괴물의 포효에 숨을 들이키면서 마우스를 움직여 계속 달리는 것이다. 상상력, 그리고 또 다른 종류의 관계에 대한 기대라는 두개의 보조 엔진으로부터 힘을 받으며.
(무협소설가, 필명 진산, 뉴스위크 한국판 2002년7월11일자에 게재한 내용을 발췌한 것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