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누라와 새벽 1시까지 본 '신데렐라 언니'...
문근영의 가슴 저리는 내면 연기, 천정명의 안타까운 눈동자...
뭐, 그렇고요.
저는 이미숙의 연기가 가장 눈에 띕디다. 은조(문근영)의 엄마 송강숙(이미숙).
강숙의 캐릭터를 보면 한국인의 멘털리티가 절절히 녹아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뭐 뜯어 먹을 게 있으면, 그가 누구라도 무슨 짓을 해서도 관계를 맺고...
뜯어 먹을 것이 없으면 가차 없이 자리를 뜹니다.

이렇게라도 살지 않으면 내 것을 지킬 수 없다는 현실논법일 수도 있고요.
그래서 생존이라는 목적 앞에 모든 수단은 정당화됩니다.
이런 엄마의 생존법을 딸 은조는 몹시도 싫어하죠.
엄마 강숙...한국 어머니의 표준은 아닐 겁니다.
우리 어머니들은 법 없이도 사셨던 분들이 많으니까요.
이익보다 의리를, 개인보다 가족을, 응징보다 용서를 실천하셨던 분들이니...
엄마 강숙은...한국 지도층을 상징한다고는 볼 수 있을 겁니다.
부도덕한 부자, 부패한 정치인, 한 껀 주의자 언론인, 견제 받지 않는 사법권력, 관료들...
사회학자 김동춘은 그의 책 '전쟁사회'에서 한국사회를 피난사회로 비유합니다.
늘 전쟁같은 세상, 사람들은 할 수 없이 피난민이 되어야 하고,
그래서 이리저리 뭐 뜯어먹을 것이 없나 두리번거리며,
현재만 중요할 뿐, 내일은 없다는 태도가 ...바로 피난사회의 특징입니다.
인류학자 조한혜정도 한국사회를 피난사회로 비유한 바 있습니다.
목적을 위해선 어떤 수단도, 불법이든, 탈법이든, 폭력이든, 불사하는 한국의 지도층을 두고 빗댄 표현입니다.
미국의 환경학자이자 미래학자인 Bruce Tonn은 미국시민들이 환경문제에 대해 관심을 그닥 갖지 않는 이유로 글로벌리즘을 들고 있습니다. 끊임없이 움직여야 생존할 수 있는 사회가 글로벌 사회인데...우리는 이동성을 현대문명의 혜택이라고 생각하지만,
이게 우리의 미래를 위해선 독이 된다는 겁니다. 이동하는 자에게는 자신만 있을 뿐 공동체는 없습니다. 이동하는 자에겐 임금의 상승, 승진의 기회만 눈에 보일 뿐, 이웃과의 관계는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이동하는 자에겐 내일을 생각할 만한 시간적 여유가 없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능력이 있어야 이동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더 좋은 직장으로, 더 알아주는 대학으로, 더 화려한 대도시로 이주합니다, 능력자들은... 그러면서 '기회'를 운운합니다. 이 움직일 수 있는 기회를 갖지 못한 사람은 무능력자로 취급받습니다. (능력있는 체하며 살았던 저의 과거를 반성해봅니다...)
그러나 멀게 볼 때, 이런 능력있는 사람들은, 초원의 풀을 죄다 뜯어먹고 떠날 뿐, 초원을 살리는 일에는 그닥 관심이 없습니다. 말로는 관심있는 체 합니다. '신데렐라 언니'의 송강숙처럼 말이죠.
신델렐라 언니에서 꼿꼿한 아버지로 나오는 김갑수는 이런 말을 합니다.
"다 먹고 살 수 있다. 천천히 가자. 그래도 된다."
한국이 피난사회를 넘어설 수 있을까요?
피난사회에서 살았던 은조(문근영)는 피난사회의 대안을 찾을 수 있을까요?
이 대안의 씨앗은 무엇일까요?
Posted by ohnu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