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전자신문 칼럼에 쓴 내용입니다만,
함께 생각해보려고 포스팅합니다. 내용을 간추립니다.
일본 쓰쿠바 대학의 대학원생들이 지난 3월 ‘로봇 신생아’를 만들었다고 발표.
아기의 이름은 요타로(Yotaro).
조그마한 침대에 누워 칭얼거리기도 하고, 까르르 웃기도 한다.
울 때는 눈에서 따뜻한 눈물까지 나온다. 
아직 아이가 없는 젊은 부부들이 요타로를 통해 아이 키우는 즐거움을 경험한다면 출산율 최저 국가의 오명을 탈출할 수 있다는 것.
그러나 요타로를 보면서 나는 다른 상상을 했다.
더 이상 아이를 가질 수 없거나,
누구도 아이가 태어나기를 바라지 않는 상황이 지구 상에서 펼쳐진다면?
요타로는 인류의 마지막 아이가 되지 않을까?
망가진 지구에선 아이를 키울 엄두가 나지 않아
로봇 아이를 키우는 것만이 유일하게 부모를 체험할 수 있는 시대!
생각만 해도 끔찍하나 많은 사람들이 이런 세계가 다가올 것을 염려하고 있다.

홍수, 쓰나미, 허리케인, 지진, 가뭄으로
21세기 초기에만 2천500만명이 사망.
물 부족, 기근, 전염병 창궐이 더해지면서
21세기 말, 15억 명이 죽거나 떠돌이.

100년 안에 인류의 생존을 위협할 가능성이 높은 사건,
기후변화, 거대 지진, 화산 폭발, 핵겨울, 감마선 노출.
인간을 능가할 로봇, 유전자 해킹, 변형 생물학은..
아직 우리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가늠조차 어렵다.
이런 예측들은 너무 끔찍해서 현실성이 없어 보인다.
아니 믿고 싶지 않다.
그러나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는 우리의 믿음과는 달리 움직인다. 예고 없는 지진, 쓰나미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었는가.
미래학이 주는 교훈은 역설적이게도 ‘내일은 모른다’는 것.
누구도 미래를 예측할 수 없다고 가정해보자.
나나 당신이나 예고 없는 사건에 피해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보자.
그럼 우린 이런 사회를 꿈꿀지 모른다.
첫째, 분배(혹은 기회)의 공평함. 둘째, 약자의 보호.
이는 어느 사회주의자의 해묵은 주장이 아니다.
자본주의의 나라, 미국의 저명한 정치철학자 존 롤스(John Rawls) 교수의 주장이다.
우리의 후손이 대대로 평화롭게 살기를 갈망하기 때문이다.
그러자면 내일을 정확하게 예측하는 것보다,
누구도 내일의 희생자가 되지 않는 세계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
너무 순진?
Posted by ohnu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