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은 그럴듯 하지만, 내용은 별 거 없는 포스팅입니다.
실망하지 마시고...
하버드 대학의 경제학 교수, 초 베스트셀러 '맨큐의 경제학'을 펴낸 필자, 그리고 조지 W 부시의 경제자문관,
그레고리 맨큐가 뉴욕 타임즈에 기고한 글을 링크합니다.
미국 발 경제위기를 예측하지 못한 책임에 대해, 그가 경제학자로서 늘어놓는 변명 쯤으로 읽을 수 있겠습니다만,
변명 같은 말에도 영양가 있는 구절이 있어 소개합니다.
아래, 링크 걸어놓은 곳을 클릭하면 바로 뉴욕타임즈 칼럼으로 이동합니다.
http://www.nytimes.com/2009/05/24/business/economy/24view.html?_r=1&scp=1&sq=GREGORY%20MANKIW%20&st=cse

맨큐가 칼럼 말미에 썼던 말을 한 구절씩 보죠...
It is fair to say that this crisis caught most economists flat-footed. In the eyes of some people, this forecasting failure is an indictment of the profession.
(맞아요, 이번 경제위기는 경제학자들을 현행범으로 체포한 셈이죠. 경제전문가로서 위기 예측에 실패했으니...)

But that is the wrong interpretation. In one way, the current downturn is typical: Most economic slumps take us by surprise. Fluctuations in economic activity are largely unpredictable.
(근데, 이렇게 보면 경제를 잘 모르고 하는 소리에요. 현재의 경제하락은 과거와 비교해 다를 것이 없고, 또 대부분의 경제위기는 갑작스럽게 닥치죠. 언제 오르고, 내리는지는 예측할 수 없어요.)

Yet this is no reason for embarrassment. Medical experts cannot forecast the emergence of diseases like swine flu and they can’t even be certain what paths the diseases will then take. Some things are just hard to predict.
(의료 전문가들도 전염병이 언제 창궐하는지, 어떤 경로로 전염되는지 잘 모르잖아요. 스와인 플루를 보세요. 예측이란 힘든 거에요.)

Likewise, students should understand that a good course in economics will not equip them with a crystal ball. Instead, it will allow them to assess the risks and to be ready for surprises.
(경제학은 미래를 보여주는 수정구슬 같은 게 아니에요. 갑작스런 변화에 대응하도록 도와주고, 위험요소를 예측해 그에 대비하도록 도와주죠.)

맞아요. 예측은 어려운 거에요.
미래학도 예측하지 않아요. 어찌 보면 미래학은 현실 재구성 학문이에요.
현실의 모습을 다각도로 구성하는...
장님 코끼리 이야기 아시죠?
각 장님이 본 코끼리의 모습은 진짜 코끼리의 모습은 아니죠.
물론 장님이 만진 것은 코끼리가 맞습니다만...부분은 맞아도 전체는 틀린....그런 그림은 가짜죠.
미래학은 여러 장님이 만진 코끼리의 모습을 진짜 코끼리의 모습과 같도록 구성하는 학문이죠.
물론 이게 미래학의 전부는 아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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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26 13:29 2009/05/26 1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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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Here 2009/06/19 15:40 # M/D Reply Permalink

    자연과학과 달리 인문학 특히 경제학 분야는 예측이 어렵다는 점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 같애요
    가장 큰 이유는 경제적인 현상을 물리법칙처럼 정교하게 나타내지 못해서 다변화되는 여건에 따라 어디로 튈지 몰라 그런 것 같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앞으로 거시경제든 미시경제든 점점 더 예측 가능한 법칙들을 발견하는 경우 예측이 맞을 확율이 조금씩 올라가겠지요

    1. 미래도둑 2009/06/23 04:00 # M/D Permalink

      미래학은 예측을 안하는 쪽으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각국 정부도 미래 예측을 포기하고, 위험관리나 신종 트렌드 연구쪽으로 선회한지 좀 됐어요.

  2. 한빛 2009/06/21 20:53 # M/D Reply Permalink

    기존 포스팅 두개가 오버랩 됩니다. The Phy Beta Kappa Society와 Hologram에 대한 포스팅. 이 두가지에 휴대폰, 인터넷, 게임 등에서 갈수록 발전해가는 Social Network Service의 개념이 더해진 시스템이 있으면 장님 코끼리만지는 일의 효율을 높일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비행기 삯 안들이고 수 만명이 모여서 특정 주제에 관해 회의할 수 있고,
    홀로그램을 통해 서로 간의 미묘한 표정 변화도 느낄 수 있으며, 무시받고 조롱당해온 기발한 아이디어들이 제발로 채팅방 들어오듯 찾아올 수 있도록 해주는 그런 시스템, 그리고 수합되고 모아진 정보들을 실제 사회 구조에 적용시킬 수 있도록 인코딩해주는 것에 (현재)전문가(라고 불리는 사람)들의 역량이 집중되는 시스템.

    코끼리를 뒤덮을 정도로 많은 수의 장님들이 한꺼번에 붙어서 동시에 손을 대보고 느낌을 얘기해준다면 그게 바로 리얼타임 델파이의 진화된 모습이 아닐까 싶습니다. 더 바란다면 각각의 장님들이 causal layered analysis를 해낼 수 있는 능력까지 갖추고 있다면 균형을 벗어난 현상에 대해 빠르게 대처할 수 있는 현실창조 시스템이 만들어지지 않을까하는 생각도 해보게 됩니다.

    맨큐와 같은 학자들에게만 모든 책임을 떠넘긴 채 fence-sitter의 위치만 고수하고 있던 많은 대중들을 직접적으로 참여시키도록 돕는 시스템이 존재해야 한다고 봅니다. 아고라의 재현이 될지, 고모라의 재현이 될지는 모르지만 결과가 어찌되든 꼴등이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5년, 10년 후에 가장 나쁜 것은 지금 아무것도 시도해보지 않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1. 미래도둑 2009/06/23 04:01 # M/D Permalink

      새로운 사회변동 이론이 하나 탄생하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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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살' 소식을 듣고 저에게도 한 가지 떠오르는 장면이 있습니다.

1995년인지 94년인지...정확하게는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만,
민주화언론운동연합(민언련)에 가입해 리영희, 강준만, 손석희 등의 강의를 듣고 다닐 때였습니다.
기금모금을 위해 맥주집을 한 곳 빌려 사회 인사들을 초청했는데,
노무현 의원이 촌부처럼 들어와 한 곳에 자리를 잡고는,
맥주도 마시고 웃고 떠들다가 때론 심각하게 토론도 하고 그랬습니다.
뺀질한 정치인 같지 않은 소탈한 풍모에, 상대의 말을 경청하는 진지한 태도는,
1일 호프집에서 일했던 저같은 대학생의 눈엔 '선비'처럼 비쳤죠.

그후 세월은 흘러 2002년 대선을 취재하는 기자로 광화문 프레스센터에 들어가다가,
노무현 대선후보와 마주쳤습니다.
정몽준 후보와 경선 끝에 단일화에 성공한 직후여서,
이미 노무현은 촌부 노무현은 아니었습니다.
386국회의원 두명이 보좌하고, 경호원도 있었습니다.
반갑게 악수라도 하고 싶었지만, 그런 상황은 아니었습니다.
그의 얼굴은 싱그러웠고 자신감에 넘쳤습니다.  
보기에 좋았습니다.

대통령 자리가 버거웠을까요? 상황이 그렇게 만들었던 걸까요?
그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얼굴은 참 많이도 변했습니다.
대통령 임기 내 많은 일이 있었죠. 지지층도 바뀌고, 이탈자도 많았습니다.
비난하는 사람은 많았고, 칭찬하는 사람은 적었습니다.
대통령 노무현의 공과를 평가하자면 적지 않은 시간이 흘러야하겠지만,
도덕성만큼은 언제 평가해도 자신이 있었고,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믿었을 겁니다.
현재 검찰 조사 중이고, 노 전 대통령의 자살을 불러온 불법자금 문제는,  
노무현 정권을 떠받치는 큰 기둥 '도덕성'을 갉아먹는 사건이었을 겁니다.

그에 관해 좋은 추억을 갖고 있고, 그에게 아낌없이 한 표를 던졌던 시민으로서,
저는 그의 죽음을 슬퍼합니다.

그러나 사회지도층에 있는 그의 자살을 두고는 마음이 몹시 불편합니다.
자살도 대안일 수 있는가 하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오로지 자살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을 그의 고뇌를 생각하면, 더더욱 가슴이 답답합니다.
요즘 이어지는 자살 행렬을 보고 있노라면, 대안이 없는 우리사회를 적나라하게 비추는 것 같습니다.

저는 미래학을 공부하면서 한가지 문제만은 풀자고 스스로 다짐한 것이 있습니다.
그건 어느날, 어느 모임에서 한 중년의 여성이 저에게 한 질문 때문입니다.
"미래학을 공부하신다죠? 그런데 미래가 얼마나 폭력적인지 아세요? 답변을 기대하지는 않겠어요..."
저는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를 물었고, 그 분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나라에서, 제가 선택할 미래는 없어요. 싫어도 따라가야할 미래만 있을뿐..."
저는 그 말씀을 듣고 적잖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대안이 없는 사회...대안을 불허하는 사회...이른바 TINA (There Is No Alternative)는,
1980년대 초 신자유주의를 신봉하던 영국의 철혈재상 마가렛 대처의 슬로건이었습니다.
사회를 전쟁사회로 규정하고, 생존만이 유일한 가치로 믿었던 대처의 슬로건은,
곧 미국의 슬로건이었고, 대한민국의 슬로건이었습니다.

저는 대안이 없다는 말을 가장 폭력적인 말로 간주합니다.
설령 지금 당장 대안이 없더라도, 이런 말은 밖으로 내뱉어서는 안 되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사회지도층의 인사들이 이따위 말을 뱉어내는 사회라면, 그건 시쳇말로 '막장' 사회인 것입니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많은 사람들이 죽음에 내몰리거나 죽음을 선택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봅니다.

외국에 살면서 '유가폭등'은 견뎌낼 수 있습디다. 자동차 안 타고 그냥 걸어다니면 되니까요.
때론 불편하지만, 저에겐 걸을 수 있는 다리도 있고, 정 불편하면 중고 자전거도 한 대 사면 되니까요.
그러나 환율의 폭등, 폭락만큼은 견디기 힘듭니다. 대안이 없어섭니다. 개인이 노력해서 되는 게 아니니까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상황, 대안이 없는 상황은...지옥입니다. 자괴감을 부추깁니다. 꿈을 접게 합니다.

사회지도층의 인사라면, 한 사회가 막다른 길로 달리는 것을 막아야 합니다.
아니, 한 사회에 막다른 길밖에 없음을 이야기해서도, 그걸 몸으로 보여줘서도 안 됩니다.


대안이 없다고 믿는 사회에서 대안이 있음을 보여줬던 노무현 전 의원의 서거를 애도합니다.
대안이 없다고 믿는 사회에 한 숟갈 보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에 대해선 침묵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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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26 05:03 2009/05/26 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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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hojai 2009/05/26 17:26 # M/D Reply Permalink

    참 많은 사람들에게 다양한 기억을 남기고 간 정치인 같습니다. ^^; 미래가 폭력적이다라는 말에 일정부분 동의합니다.

    1. 미래도둑 2009/05/27 03:42 # M/D Permalink

      호자이, 잘 있제~

  2. 미래도둑 2009/05/30 04:35 # M/D Reply Permalink

    헤겔의 시각으로 사회를 보았던 탁월한 프랑스 철학자 코제브(A. Kojeve)는 욕망의 목적은 손에 잡히는 것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으로부터 주목을 받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는 '주인과 하인'의 비유를 들면서, 하인의 욕망은 주인으로부터 인정 받는 것인데, 주인의 경우 그를 인식하거나 인정해주는 대상은 없다는 겁니다. 하인의 인식은 쓸 데 없는 것이죠. 그럼, 주인은 어떻게 욕망을 해소하는가? 코제브는 욕망의 궁극적 정착지는 바로 죽음-자살-이며, 스스로를 부정하는 자살이야말로 역사를 완성케하는 요인이라고 보았습니다.
    주인이 죽는 시점에서 모든 사람은 모든 사람을 인식하게 되고, 이 지점에서 모든 사람의 욕망이 해소되며, 역사는 더 이상 굴러가지 않고 끝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훗날 후쿠야마가 말한 역사의 종언, 역사의 완성이라는 개념이 나오는데, 이는 인간이 더 이상 투쟁과 노동으로 얻을 것이 없는, 그야말로 자유로운 세상을 말합니다. 후쿠야마에겐 1990년대 공산권이 무너지면서 자본주의와 민주주의가 승리했다고 보고, 이를 역사의 종언으로 이야기 합니다. 노무현은 자살을 선택함으로써 그만의 역사를 완성하려고 했던 것일까요? 자살을 통해 모든 사람이 서로를 인식하면서, 새로운 대안을 찾으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요? 누구도 그의 업적을 평가하도록 허락하지 않고 스스로 판결을 내린 것일까요?

  3. Here 2009/05/31 16:06 # M/D Reply Permalink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이 던지는 의미가 무엇일까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다.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조각이 아니겠는가?'처럼
    그가 마지막으로 던지 화두에서 나름대로의 실마리를 보았지요

    진정으로 얻은 깨달음이거나 어슬픈 깨달음이거나 알 바는 아니고
    자살에 대한 찬반 논쟁에 에너지를 쏟고 싶은 생각도 또한 없습니다

    어쩌지 못할 듯한 여건에서 스스로 온몸을 던짐으로써
    나름대로 최적(?)이라고 여기는 길을 간 것이지요

    의외로 많은 국민들이 그가 택한 최후의 선택에 머리를 끄떡이며
    역시~라는 이구동성을 여기저기서 듣곤 합니다

  4. hojai 2009/06/15 22:54 # M/D Reply Permalink

    확실하게 미래는 상당부분 예정되어 있다는 사실을 느낍니다. 2009년 노무현의 죽음은 어찌보면 그가 대통령에 도전하면서 부터 예고된 일이었다는 건데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에효.

    1. 미래도둑 2009/06/17 06:14 # M/D Permalink

      왜? 왜, 예고된 거야? 노무현 후보시절, 무당 만난 얘기하는 건 아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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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 최재천 교수가 바람을 일으킨 통섭이란 말이 있습니다.
서구의 철학하는 사람들은 통섭의 미국말인 consilience를 환원주의로 알아듣습니다만,
최 교수의 통섭은 환원주의적 요소를 줄이고,
학문간의 경계를 허물고 지식을 나눈다는 의미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런 동서양의 시각 차이도 흥미롭습니다만,
오늘 '통섭'에 대해 포스팅 하는 이유는 통섭을 실현하는 방법론을 제안하기 위해섭니다.
얼마 전, 미국의 어떤 학자를 검색하다가 그가 Phi Beta Kappa visiting scholars라는 것을 보았습니다.
'파이 베타 카파의 방문교수'쯤으로 번역할 수 있을텐데요.
이게 도대체 뭔가하고 찾아봤더니, 이런 설명이 있더군요.
우선 '파이 베타 카파'의 뜻은 지식을 사랑하는 마음이 삶의 등불이 된다는 것이고요.
여기서 잠깐, 네이버 같은 데서 이 단어를 넣어보니,
미국 대학생 중에서 성적 우수자들의 모임으로 가장 오래됐다는 설명이 있군요.
이름하여 파이 베타 카파 협회(The Phy Beta Kappa Society)...
여기 회원이라면 대학 다닐 때 공부 좀 했다고 보면 되겠군요.

그런데, 파이 베타 카파 교환교수 프로그램은 의미가 조금 다릅니다.
저명한 교수들이 파이 베타 카파 지부가 있는 대학을 방문합니다.
통상 2일 간의 일정으로 이들은 학생들과 교수들을 만나 토론하고,
공개 강의를 통해 폭넓은 청중을 만납니다.
이를 통해 아이디어를 교환하고, 서로가 하고 있는 일을 이해할 수 있는 거죠.  

이 프로그램은 1956년에 시작됐고,
지금까지 총 555명의 학자들이 4,651번의 이틀 방문을 마쳤다고 합니다.
모르겠습니다...한국에도 이런 프로그램이 있는지.
미국이란 나라가 넓어서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서로를 전혀 모르기 때문일까요.
통섭이란 게 별거 있습니까?
이렇게 만나면 되는 거죠, 그렇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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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20 22:26 2009/05/20 2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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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한빛 2009/05/27 01:47 # M/D Reply Permalink

    교수와 학생들이 만들어내는 지식의 폭과 깊이로부터
    새로운 시대를 이끌 수 있는 다양한 변주들이 흘러나오리라 생각됩니다.

    the Phi Beta Kappa Society.
    글을 읽으면서 이미지를 그려보니 바다로 흘러드는 수많은 물줄기들이 연상이 됩니다.
    학생들은 교수에게로, 때로는 교수가 학생에게로 끊임없이 상대에게 흘러들며
    서로가 서로에게 (지식의) 바다가 되어주는 환경.

    바다가 낮은 곳에 있어야 강물이 흘러들 것입니다.
    우리사회에서 바다는 높은 곳으로만 임하려 하니
    잦은 홍수와 그에 따르는 끝없는 땜질의 순환에서
    벗어나기 힘든게 아닌가하는 생각도 해보게 됩니다.

    화두가 되는 글, 감사히 보았습니다.

    1. 미래도둑 2009/05/27 03:42 # M/D Permalink

      한빛님의 바다 이미지는 재미있네요. 상상하는 힘이 아주 뛰어납니다.

  2. snow 2009/06/03 16:08 # M/D Reply Permalink

    선배, 저 설이에요.
    호자이 선배 블로그에 우연히 갔다가
    선배 성함 발견하고 반가워서 퍼뜩 달려왔어요. 흐흐.
    방명록이 없어 이곳에 흔적 남깁니다.
    재미있는 내용이 무지 많네요.
    자주 놀러올게요.~

    1. 미래도둑 2009/06/03 17:18 # M/D Permalink

      우와! Snow님!! 누추한 곳까지 들어와주시고, 안부도 물어봐주시고...고맙습니다. 참고로... 미래도둑 밑에 게스트북(guestbook)이라는 데가 방명록입니다만, 중요한 건 아니고요. 참으로 반갑습니다. Snow님 옆에 모시고, 글 쓰고 했던 게 엊그제인 것 같은데...잘 계시죠? 블로그가 좋긴 좋군요...! 가끔이라도 소식 전해주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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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의 미래'에 대한 재미있는 토론이 오가고 있습니다.
어디서?
바로 여기서.
http://ccsl.mae.cornell.edu/natural_laws
http://seedmagazine.com/content/article ··· olete%2F

최근 코넬대 컴퓨터공학과 립슨 교수팀은 일명 '자연과학법칙을 발견해내는 컴퓨터'를 발견했다면서,
실험결과를 과학저널 사이언스(Science)에 발표했습니다.
이에 대한 자세한 설명과 동영상은 제가 위에 걸어놓은 첫번째 링크에 담겨 있습니다.
요약하자면,
컴퓨터에 복잡한 실험데이터를 넣으면 이것이 의미하는 바를 특정한 수식으로 표현한다는 것입니다.
특정한 수식은 바로 만고불변의 '과학의 법칙'이 됩니다.
과학자라면 생애 한 번이라도 '유레카!(법칙을 찾았다!)'를 외치고 싶어하는데,
컴퓨터는 끝도 없이 유레카를 생산한다는 것이죠.
이를 증명하기위해 코넬대 실험팀은 이중 진동자를 이용합니다.
보기에도 아무런 규칙없이 제멋대로 움직이는 진동자의 움직임을 관찰한,
컴퓨터는... 구체적인 방정식을 보여주면서 이 공식에 따라 진동한다고 주장합니다.
짧게는 몇 년, 길게는 수백년씩 과학자들은 선배 연구자들의 궤적을 추적하면서,
새로운 법칙을 발견합니다. 이 과정에서 숱한 과학자들이 아무 발견도 못하고 쓰러집니다.
그러나 컴퓨터는 마치 신처럼 과학법칙을 척척 찾아냅니다.
이래도 되는 겁니까? 한낱 컴퓨터 주제에!

제가 두번째로 링크한 글에선 코넬 교수팀의 연구에 대해 다른 시각을 제시합니다.
중요한 건 수식의 발견이 아니라 수식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내는 것!
의미를 찾는 건, 사람만이 할 수 있다는 겁니다.
의미를 찾는 건,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실행할 수 없다는 거죠.

여기까지가 두 글의 주요 내용입니다.
질문이 하나 떠오르는 데요.
만약 컴퓨터가 과학법칙, 즉 답을 찾는 노력을 멈추고,
질문하는 능력을 갖춘다면,
인간과 컴퓨터는 어떤 관계가 될까요?
코넬연구팀의 업적은,
이런 질문의 가능성을 열어놓았다는 데서 찾아야 할 것 같습니다.
연구팀은...
"과학자들에게는 불분명해 보이는 것이 컴퓨터에겐 명확하게 보이고,
과학자들에게 명확한 것이 컴퓨터에겐 이상하게 보일 수 있다"며
컴퓨터가 조만간 과학자들에게 의미있는 질문을 할 수 있음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을 키워보면 놀라운 것이 질문하는 능력입니다.
질문하면서 성장하고, 질문하면서 자신의 세계를 구축합니다.
컴퓨터가 질문하기 시작한다면,
그건, 곧 인간의 세계를 벗어나 독자적인 세계를 구축하는 시작점임을 의미합니다.

어떻게 생각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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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ohnul

2009/05/14 10:10 2009/05/14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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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Here 2009/05/14 13:23 # M/D Reply Permalink

    제멋대로인 것처럼 보이는 방대한 실험데이터로부터 질서 정연한 최적의 수식을 찾아내는
    인공지능 기법이 핵심이로군요. 점진적으로 최적화되어가는 Iteration 방식이 엿보입니다.
    그 이전에 알고 있는 물리상수, 물리량, 수식들이 기본 DB로 활용될 것 같고....

    Free-form 이라고는 하지만, 찾고자하는 관심 영역(이를테면, 에너지 보존법칙, 또는 운동방정식 등)은
    미리 어느 정도 제한하는 것은 컴퓨터 부담을 줄이기 위해 필요해 보입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쌓이는 방대한 실험 데이터를 적절히 분류하고 그룹화하거나 가려내거나
    다이내믹하게 순차적으로 이용하는 알고리즘등이 소개된 프로그램에 포함되어 있어 보입니다.

    다만, 이런 류의 방식은 이미 알고 있는 정보와 물리규칙을 기반으로 새로운 수식을 찾는 것으로
    기존 과학의 틀안에서 이루어질 것입니다.

    예를 들면, 차원분석(Dimensional Analysis)에서 제시하느는 규칙, 즉 차원이 다른 물리량간에는
    더하거나 빼거나 크기를 비교할 수 없다는 규칙 등을 벗어나지는 못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따라서 새로운 수식을 발견하기 위해 Iteration 을 거치는 동안, 가용한 수식들의 경우의 수에서
    적지않게 제한 될 것으로 보이고, 따라서 최종적으로 발견하는 수식의 종류에도 한계가 있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질문이 좋아도 답을 할 수 있는 경우의 수가 미리 제한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한계를 뛰어 넘을 수 있다면 확장성이 폭발적으로 늘어나지 않을까요?

    다만, 이러한 한계를 수학적으로 넘어 구해지는 수식들 중에는 물리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수식들이 존재할 가능성이 매우 크게 여겨집니다.

    이런 경우 '물리적으로 이해하지 못하는 수식은 의미가 없다'고 주장하는 과학자들이 적지 않다는 점을 고려하면 컴퓨터가 찾아낸 결과를 두고 이 결과가 의미있는 수식으로 인정하는 과학자들과 그렇지 않는 과학자들간의 치열한 논쟁이 불거질 가능성이 예상됩니다

    1. 미래도둑 2009/05/15 05:19 # M/D Permalink

      부족한 글에 생명력을 불어넣어주심을 감사드립니다. 물리량간의 덧셈뺄셈이 가능하도록 프로그래밍 한다면, 이를 통해 컴퓨터가 새로운 법칙을 발견한다면, 우리에겐 새로운 지평이 열리겠군요...

  2. 한빛 2009/05/15 04:54 # M/D Reply Permalink

    본문 글과 댓글을 보고 있으니 머릿속이 시원해지는 느낌입니다.
    좁은 인식의 틀을 넓혀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저의 단순무식 관점으로 바라보자면
    컴퓨터는 껍질이 바깥에 있고, 인간은 껍질이 안쪽에 있는 정도의 차이를 가진
    서로 다른 종인 것 같습니다.

    이제껏 저는 컴퓨터 또한 인간에 의해 창조된 것이기에
    통제 또한 뜻대로 될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컴퓨터가 인지+운동능력을 지니게 된 현재에는 그 생각을 철회해야 하지 않나 하는 마음도 생깁니다.

    컴퓨터는 인간과 다르게 육체적인 성장을 필요로 하지 않으므로
    지적인 성장이 시작된다면 순식간에 성인(인간기준)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본문 글을 보면서 떠오른 컴퓨터에 대한 이미지는
    언어 폭발 시기를 목전에 둔 유아의 모습이었습니다.
    컴퓨터가 질문을 시도하고 있더라도 인간에겐 아직 소음으로 인식될 뿐이겠지만
    한편으론 그들과 서로의 부족함을 메꾸어 가며
    공진화해갈 날 또한 머지 않았겠구나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됩니다.

    당장 가깝게 다가올 미래들을 설계해가기 위해서는
    컴퓨터에 인지, 운동능력이 결합된 로봇의 미래에 관심을 가지고
    그들과 공존할 구체적인 준비를 해두어야 하지 않을까요.
    생각이 여기에 미치니 이 상황을 이미 오래전부터 준비해 온 몇몇 분들의 혜안에 그저 감탄하게 될 뿐입니다.

    p.s. 이런저런 준비는 부지런히 하고 있습니다. 혼자 해보려고 하다보니 역시 부딪히는 점들이 조금씩 생기네요.
    수일내로 메일 한 번 드리겠습니다. ^^;

    1. 미래도둑 2009/05/15 05:20 # M/D Permalink

      늘 그렇듯 세심하고 번뜩이는 댓글에 감사...뭐가 필요한지 메일 주세요. 같이 고민합시다.

    2. Here 2009/05/15 07:40 # M/D Permalink

      컴퓨터의 프로그램 수준은 이미 스스로 학습하고 학습된 지식을 기억하고 응용하는 능력을 지녔다는 것은 많이 알려진 사실입니다. 가장 쉬운 예로 장기나 바둑을 두는 컴퓨터가 반복되는 게임횟수에 따라 실력이 늘어 고수들을 이겨가는 과정을 볼 수 있지요.

      그 뿐이 아니라 프로그램이 새로운 프로그램을 만들어 내는 능력은 흡사 생물의 종족번식을 연상케할 정도로 능력이 발전하고 있습니다.

      하드웨어적으로 미세한 표현과 동작이 가능하도록 만들어진 로봇이 점진적인 소프트웨어 발달에 따라 스스로 생각하면서 판단하여 말하고 웃고 우는 감정의 표현까지 가능할 것은 자명해 보입니다.

      물질과 비물질의 경계가 허물어진지 오래된 마당에 생명체와 비생명체간의 경계가 사라질 가능성을 주장하는 과학자와 미래학자가 점차 늘어나는 추세를 흥미롭게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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