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ocentrism(생물중심주의)으로 세상을 본다면?
주목! 이 사람 2008/09/25 03:46
(사진출처:Pimm-Partial immortalization)
로버트 란자(Robert Lanza)를 아십니까.
약력:
-a vice president of research and scientific development at Advanced Cell Technology.
-a professor at Wake Forest University School of Medicine.
-written 20 scientific books and won a Rave award for medicine from Weird magazine and an "all star" award for biotechnology form Mass High Tech:The Journal of New England Technology
번역하는게 번거롭고 또 번역해봐야 엉터리일테니, 그냥 영어로 올립니다.
쉽게 말하면 요즘 뜨는 생물학자라고 할 텐데요.
지난해 3월 American Scholar에 쓴 논문 한 편이 제 눈을 확 끌었습니다.
제목은 이렇습니다. A new theory of the universe: biocentrism builds on quantum physics by putting life into the equation.
제목의 마지막 말에 주목해주세요...
by putting life into the equation!!!(생명을 수학공식에 넣다!!!)
수식에 생명을 넣다니요? 이게 뭔 말일까요?
그의 기본 철학은 모든 생명엔 의식이 있다는 겁니다. 인간은 물론 단세포든 고양이든.
따라서 모든 생명의 주관적인 경험을, 쉽게 말해 모든 생명을 존중하는 것이,
생명중심주의 Biocentrism이라는 겁니다.
돌에도 의식이 있다고 믿는 동양적 사고방식으론 별로 새로울 것도 없어 보이지만,
다음의 그의 말은 곱씹어볼만 합니다.
Most of these comprehensive theories are no more than stories that fail to take into account one crucial factor: we are creating them. It is the biological creature that makes observations, names what it observes, and creates stories.
우리는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창조하고 있다는 말...제가 얼마 전에 펴낸 책 "H그룹 직장영웅전설"에서 쓴 적이 있는데, 란자 박사도 우리는 창조하고 있다는 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창조하고 있기 때문에, 창조에 대한 책임을 져야한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인간이나 단세포 동물이나 끝없이 자신의 세계를 창조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과학의 힘으로 모든 세계를 객관적으로 관찰할 수 있다고 믿고 있지만, 생물중심주의 시각에선 그렇지 않습니다. 모든 것은 다 주관적이라고 합니다. 우리의 의식은 끝없이 실제를 재단하고, 재창조한다는 점에서그렇습니다.
란자의 설명을 듣고 있으면 객관적 진리는 없다는 주장처럼 들립니다. 콩트의 실증주의를 넘어서 현대에 상대주의가 실제를 탐구하는 방법으로 자리를 잡았듯, 란자의 얘기는 생명을 뺀 과학적 탐구는, 즉 생명의 연속성을 고려하지 않은 과학적 사실은 단편적임을 지적합니다. 하이젠버그의 불확정성원리가 위치와 운동량을 동시에 알아낼 수 없다는 것을 주장하듯, 하나가 들어가면(if one comes out) 또다른 하나가 빠져나오는(the other goes in) 모순을 현대의 과학은 막아낼 수 없습니다.
그럼 우리가 진리임을 믿고 있는 진실은 어떻게 알아낼 수 있을까요. 그것이 진리임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을까요. 하이젠베르그(Heisenberg)는 계속 관찰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합니다. "A path comes into existence only when you observe it." 존 휠러(John Wheeler)는 급기야 관찰할 수 없는 건, 존재하지 않는다고도 했습니다. "No phonomenon is a real phenomenon until it is an observed pheonomenon." (대부분 아시는 얘기지만, 이에 대해 아인슈타인은 태양을 볼 수 없다고 태양이 없다고 말하는 건, 웃기는 말이라고 꼬집은 바 있습니다.)
그러나 란자는 관찰하는 사람의 의식이 중요하다는 자신의 주장을 계속 고집합니다. 란자는 유진 위그너(Eugene Wigner)의 말을 빌려 관찰자의 의식을 빼놓고는 법칙을 만들 수 없다고 말합니다. "It is impossible to formulate the laws of physics in a fully consistent way without reference to the consciousness of the observer." 쉽게 말하면 부엌에 들어갈 때, 안방의 세계는 사라지는 겁니다. 부엌에서 화장실로 이동할 때, 부엌의 세계는 사라지는 겁니다. 란자는 확신에 찬 어조로 이렇게 말합니다. "Everything outside your range of perception does not exist."
그래도 과학의 법칙은 존중되어야 한다거나 혹은 과학적 법칙만이 유일한 진실이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란자는 죽음에서 새 생명이 태어나는 현상을 과학은 죽었다 깨어나도 법칙으로 증명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한 번의 빅뱅에서 우주가 태어났다면, 그것이 다시는 일어날 수 없는 것이라면, 딱 한 번의 실수를 용납하고, 나머지 것들만 과학적 법칙으로 밝힐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가 태어난 사실, 여기에 이렇게 버젓이 살아있는 실재를 딱 한 번의 실수라고 용납하는 건, 가장 중요한 사실을 밝히지 못하는 과학의 한계를 증명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과학이 궁극적으로 설명해야 할 것은...따라서 생명이며, 의식입니다. 그러나 란자의 생명중심주의도 생명(의식)을 물리공식에 넣어야 하다고 주장하지만, 그것을 어떻게 하는 건지는 설명하지 못합니다.
이걸 설명하는 공식 혹은 방법은 없을까요? 제가 보기엔 어느 곳에서는 이미 이런 작업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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