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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은 것을 추구하다보면...

잡담잡설 2008/05/21 06:25
미래학을 공부하면서
'Better'와 'Transformational'의 차이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있다.
(편의상 '베러'와 '트랜스폼'으로 말하자면)

베러는 말 그대로 현재의 문제점을 개선하는 것을 뜻한다.
자동차 엔진의 성능을 강화한다든지, 인테리어를 바꾼다든지, 산에 나무를 좀 더 심는다든지...

트랜스폼은 일종의 드라마틱한 변화를 말하는데, 예를 들면 애벌래가 나비가 되는 것.
꼬물꼬물 기어다니는 애벌래가 어느덧 허물을 벗고 나비가 되어 훨훨 날아가는 과정 말이다.

지금껏 내 인생을 곰곰이 생각해보면, 끊임없는 '베러'의 과정이었던 것 같다.
아니, 베러를 강요당한 것 같다. 숱한 시험, TF팀, 매월 출고상황....
개선하지 못하면 그야말로 도태되는 삶이, 지금껏 내 인생의 전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난 뭘 위해 개선하려고 했는가....
...하는 의문이 들기 시작한 것이, '트랜스폼'이란 단어를 알고나서부터다.
그러니까, 좀더 빨리 기어가는 애벌래가 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질문이 생기면서,
나는 한 마리의 나비가 되는 꿈을 꾸기 시작했다.

(이렇게 단언해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한국은 '베러'를 위해 몸부림치는 사회다.
더 나은 것을 위해 뛴다는 것은 숭고한 일인데, 문제는 나의 '베러'가 아니라 남의 '베러'가 된다는 점이다.
한 마디로 남 좋은 일만 시킨다는 것인데.
예를 들면, 화장품 외판원이 있다고 치자. 화장품을 많이 팔기위해 판매기술을 익혔다고 치자.
열심히 해서 판매왕에 올랐다고 치자. 그가 얻은 판매의 기술은 원래 누구 것이었는가.
판매의 기술은 대부분 미국 Marketing 기법에서 들여온 것이다.
어떻게 하면 소비자들이 더 많은 돈을, 더 많은 화장품을 사는데 쓰도록 부추길까 하는 고민의 과정에서,
판매의 기술이 탄생한 것이다.
그러니까 판매의 기술을 연마해서, 판매의 왕이 됐다는 건, 미국식 판매기술을 발전시킨 결과다.
미국식 자본주의를 개선했다는 칭찬을 받을 만 하다.
판매왕이 되서 부자가 되고, 자신감을 얻고 하는 것은 다 좋다.
그러나, 남의 기술을 연마하다보면 부수적으로(필연적으로) 딸려오는 것이 있다는 것도 알아야 한다.
미국은 부자가 될수록, 훨씬 '독립적'이 된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
유러피안 드림을 쓴 제러미 리프킨은 이 점이 미국과 유럽의 차이라고 말한다.
미국은 돈 벌어 자신을 고립시키는데 쓴다면, 유럽은 돈 벌어 상대와 나누는데 쓴다고 한다.
미국인은 부자되면 폐쇄적인 그룹에 낄려고 하고, 집 담장을 더 높이고, 밖에서 보이지도 않는 시커먼 차를 타고 다닌다는 얘기다. 반면 유럽인은 부자되면 자신의 사회성을 넓히고, 인맥을 더 넓혀, 사회적 영향력을 키우는데 노력한다. 이런 미국식 자본주의를 신영복 선생은 'substance-centered paradigm'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 관계를 맺기보다 남과 비교해 자신의 강점을 더 드러나보이도록 한다는 점에서다. 신 선생은 대신 'relation-centered paradigm'이 바람직하다고 말한다. 승자와 패자를 가르지 말고, 함께 성장할 수 있는 방법을 찾으라는 얘기다.

미국식 판매기술을 연마해 판매왕이 됐다는 건, 축하할 일이지만, 미국식의 사고방식도 어느덧 체득하고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결국 베러는 남의 몸까지도 받아들이는 것임을.

반면 트랜스폼을 추구하는 사람은 언뜻 엉뚱해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자신의 것을 찾기 위해 몸부림친다.
예컨대 조선후기 실학운동은 원재린 선생이 지적했듯 "자득(自得)을 이루기 위해 남의 견해를 얻어듣기만 해서는 안 된다"는 자각에서 시작됐다 (원재린, 조선후기 성호학파의 학풍연구. 29쪽). 나는 한국이 이때부터 근대학문을 시작했다고 본다. 남의 것을 참고하되, 자신의 가치 속에서 재구성하는 것이다.

판매왕으로 다시 돌아가보자. 판매왕의 경우, "그럼 어떻게 해야 트랜스폼을 추구하는 판매왕이 될 수 있느냐"고 물어볼 수 있을 것이다. 그 질문의 대답은 이렇다. "판매왕이 된 힘으로 앞으로 뭘 하실 것이냐?"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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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승환 2008/05/21 16:16 PERMALINKMODIFY/DELETE REPLY

    아, 어렵네요... 그런데 사회 구조 자체가 대단히 서구적으로 짜여 있는지라 (해방 당시 한국사회와 현재 서구 중 21세기 한국은 서구 쪽에 가깝다 생각되네요) 여기서 벗어나기도 쉽지 않아 보입니다. 먹고 살기 위한 스킬은 익힐 수밖에 없으니까요; 정말 사회 전체에 큰 변화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 미래도둑 2008/05/22 03:39 PERMALINKMODIFY/DELETE

      이승환님 오랜만이죠? 중국 공부는 잘 되가나요? 질문하시는 걸 보니, 그 '진지함'은 이전보다 더 한 것 같습니다. 조선시대 양란(왜란, 호란) 이후에 우리 선조들은 나라 재건을 위해 몸부림친 것 같습니다. 한쪽은 중국을 더 배워야 한다고 하고, 한쪽은 우리 문제를 더 들여다봐야 한다고 했고요. 저는 허목 대감을 특히 눈여겨보는데(제 블로그 어딘가 허목 대감에 대해 쓴 글이 있는 것 같은데), 그 분은 북벌론을 주장하는 조정을 비판하면서, 농촌사회의 피폐함, 백성들의 굶주림을 먼저 챙겨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우리 현실에서 문제를 찾아, 그걸 해결하는데 힘을 쏟아야 한다는 것이죠. 전, 우리 안에 문제를 발견하고, 그걸 문제라고 인식하는 힘이 급선무라고 생각합니다. 이승환님 생각은 어떠세요? 한국의 문제는 뭐라고 보세요?

    • 이승환 2008/05/23 16:39 PERMALINKMODIFY/DELETE

      부담스럽사옵니다. 제가 뭘 알겠습니까? 제가 그저 걱정인 것은 '과잉 경쟁' 때문에 '자원 배분'이 최악으로 일어나는 것입니다. '대학 입학'에서 한 차례, 그리고 '취업 문턱'에서 한 차례 전쟁이 일어나는데 사실 이게 그 전에 거의 결정난 상태로 나아가는 것 같아서 말이죠. 이미 상류층이 교육 혜택을 많이 받아 고학력, 고소득으로 나아가고 나머지는 그저 경쟁에서 잃기만 하고... 그렇다고 국가가 나서면 또 난리가 날 테고 참 힘든 문제입니다 -_-a

  2. Beatmania 2008/05/21 20:03 PERMALINKMODIFY/DELETE REPLY

    잊고 살았는데, 좋은 글 감사합니다. 미국이 물질적으로 풍요해 보여도, 정신적으로 황폐한 사람들이 너무 많지요. (동양철학/불교 붐이 괜히 일어나느게 아니죠.)

    • 미래도둑 2008/05/22 03:43 PERMALINKMODIFY/DELETE

      Beatmania님, 코멘트 고맙습니다. 바쁘실텐데, 글도 읽어주시고, 직접 멘트도 해주셔서...잠깐 님의 블로그에 들어가봤는데, 미국에 사시는 것 같습니다. 저도 미국, 그것도 저 변방에서 살고 있습니다만, 미국사회 문제도 많은 것 같습니다. 우리가 한번쯤 코치를 해줘도 될 법한 문제도 꽤 있는 것 같아요. 예컨대 의료문제 같은 것. 미국에 뭔가 배울 것이 있을 것 같아 왔지만, 그리고 많이 배우고 있지만, 제가 뭔가 줄 것도 있는 것 같습니다.

  3. Lane 2008/05/24 13:46 PERMALINKMODIFY/DELETE REPLY

    음....
    잘 아시겠지만, 전 어려운 용어들은 잘 모르겠구요. (-_-)ㅋ

    어쨌거나,
    저두 그간 '먹고 사는 문제' 즉,
    미래도둑님의 윗 글을 빌리자면,
    바뀐 환경에 적응하여, 현재 우리 사회의 구조속에서, 보다 빠른 안정을 위한 '베러' 추구에 열을 올리느라 그 이외의 것들을 모두 소홀히 하고 있는 '중'입니다.

    최소한 우리들의 가장 큰 딜레마는 이런게 아닐까 싶은데요.
    '목구멍이 포도청'이라는 말과,
    '용기가 없다'라는 말이요.

    하긴, 또 어떻게 생각해보니, 그 '용기'를 내신 분들이 '성공'을 하신 분들일 수도 있겠단 생각도 드네요.


    미래도둑님 글을 읽을때마다 잠시 잠시 현실에 묻혀 잊고 지내던것들을 다시금 되새길 기회를 가지게 됩니다.
    잘 지내시죠?

    • 미래도둑 2008/05/27 00:24 PERMALINKMODIFY/DELETE

      떠나보니, 참 친구가 누군지 알게됩니다...
      레인님, 소식 궁금했는데, 고맙습니다. 덕분에 잘 지내고 있습니다. 미래학 공부 덕분에, 지난 학기엔 제가 왜 기자를 그만뒀는지 깨닫게 됐고, 이번 학기엔 왜 (잠시) 한국을 떠났는지 알게됐습니다. 이런 게 공부하는 재미 같아요. 물론 예상외로 많은 돈을 썼지만 말입니다...^^;

      먹고사는 문제에 대한 중요성에 대해, 잘 알고 있습니다. 레인님 의견에 100% 공감합니다. 다만, 먹고사는 문제는 감사할 일이지, 걱정할 일은 아니라고 봅니다. 지금껏 별탈없이 먹고살게 해준, 부모님, 선배님, 조상님들께 감사합니다. 그런데, 진짜 제가 걱정하는 건, 당장 내일 아무 의미없이 죽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입니다. 이 가능성, 상당히 높습니다. 어떻게 보면, 우리의 고민은 별 문제 없이 먹고살게 해준 분들께 진 빚을 갚는 데 있다고 봅니다. 그분들은 왜 우리를 먹고살게 해주었을까요?....라는 게 제 질문이고, 여기 오게 된 이유이기도 합니다.

  4. hojai 2008/06/05 20:53 PERMALINKMODIFY/DELETE REPLY

    저두 오랜만에 꾸벅

  5. 미래도둑 2008/06/06 08:36 PERMALINKMODIFY/DELETE REPLY

    정 대감, 잘 계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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