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비 효과. 미국의 기상학자 에드워드 로렌츠가 ‘브라질에 있는 나비의 날갯짓이 미국 텍사스 주에 발생한 토네이도의 원인이 될 수 있을까’라는 논문을 발표하면서 알려진 이론이다. 로렌츠는 이 이론을 통해 사소한 변화가 훗날 엄청난 재난을 몰고 올 수 있다고 주장했다.
종종 피의자를 만나 얘기를 들어 보면 일종의 ‘나비 효과’를 보는 것이 아닌지 어리둥절할 때가 많다. 어렸을 때 부모로부터 사랑 받지 못하거나, 정신적 혹은 신체적 콤플렉스 때문에 외로웠던 유년기가 있던 사람들이 훗날 여러 명을 살인하는 범죄자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30대 초반의 Y씨. 수많은 피의자를 만났지만 그만큼 가슴 아픈 사연을 담고 있는 사람은 없는 것 같다. 그를 면회하고 돌아오는 길에 Y의 삶은 기록으로 남겨 공유해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제목을 붙이자면 ‘아름다운 죄, 사랑 때문에’쯤 될까. 가수 조용필의 노래 가사를 연상케 하는데, Y의 삶이 그랬다. 누차 언급했지만 나는 범죄를 동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범죄의 동기는 동정한다. 이럼 점에서 Y는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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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임교사에게 달려간 Y는 “학교를 그만 다니겠다”며 울분을 터뜨렸다. 사정을 알고 있는 담임교사는 그를 진정시켜 집으로 돌려보냈지만, 그는 다음날 다시 담임선생을 찾았다. Y는 “나가서 돈을 벌고 싶다”고 말했고, 담임선생도 “그렇다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아라”하며 그의 뜻대로 해주었다.
그러나 막상 중학교 중퇴자의 신분으로 나선 사회는 만만치 않았다. 다방 청소, 껌팔이, 공사장 막일 등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때론 아버지에게 붙잡혀 집으로 돌아갔으나 계모 슬하에선 하루를 견디기 힘들었다. 다시 가출했다.
누구에게도 의지할 수 없던 Y는 묵묵히 일하는 것으로 자신의 처지를 달랬다. 지방의 한 식당에선 성실하고 꾀를 부리지 않는 그를 위해 주인이 월급 통장을 만들어 꼬박꼬박 급여를 넣어주기도 했다. 친구도 없고, 그렇다고 돈 쓰는 방법도 몰랐던 Y는 돈 모으는 재미로 혹독한 삶을 견뎠다.
돈이 어느 정도 모이고, 나이가 들자 서울로 직장을 옮겼다. 술도, 담배도 하지 않고 열심히 일하는 그는 어느덧 통장에 1억2000만원이라는 거액을 모았다. 이제 갓 20세를 넘긴 나이에 그만한 돈은 엄청난 액수였다. 그에겐 집과 직장이 인생의 전부였다.
어느 날, 퇴근길에 그는 우연히 초등학교 동창생 K를 만났다. 정을 못 받고 자란 아이가 낯선 서울로 올라와 살다가 고향 친구를 만났으니 얼마나 반갑겠는가. 서로 안부를 묻고, 고향 얘기를 하다보니 정감이 남달랐다. 그 뒤로 둘은 자주 만났고, 연인 사이로 발전했다.
“죽이고 싶지 않았으니까…”
K를 만나면서 그는 새로운 삶의 기쁨을 맛보았다. 배고팠던 사람이 허겁지겁 밥을 먹으면 체하 듯, 인간애가 결핍된 채 자란 Y는 여자에게 쉽게, 깊숙하게 빠져 들었다. 결국 Y는 “결혼하자”고 청혼했고, K도 ‘돈 많고, 성실한’ 그를 마다하지 않았다. K의 부모에게도 결혼 승낙을 받았다. 처음 맛본 행복감에 그는 시간만 나면 K의 집으로 찾아가 일을 거들어주었다.
순조로웠던 둘 사이는 뜻하지 않은 걸림돌로 휘청거리기 시작했다. K의 어머니가 두 사람의 궁합을 보니 ‘결혼을 해도 나중에 헤어진다’는 얘기를 듣게 된 것. K의 어머니는 딸에게 다른 사람을 찾아보라고 말했다. 어머니의 뜻을 거절할 수 없던 K는 그만 이런 사실을 Y에게 털어놓았다. 청천벽력 같은 소리였다. 지금까지의 행복이 어디론가 흩어져버린 것 같았다.
Y는 K의 어머니를 찾아가 절대 헤어지는 일이 없을 것이라고 했지만, 한 번 변한 마음을 돌이키기란 쉽지 않았다. 처음엔 정성이 부족한가싶어 Y는 매주 지방에 있는 그 집으로 가서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고 했다. Y는 평생 써본 적이 없는 거금을 들고 K와 호사스런 관광여행을 떠나기도 했다. 그러나 운명을 돌이킬 수 없었다. 무릎을 꿇고 빌어도 봤지만, 요지부동이었다. 그는 “그렇다면 너를 보내주겠다”며 “그러나 마지막 부탁이 있다. 지금부터 두 달만 함께 있자”고 말했다. K는 그 정도는 해 줄 수 있다는 생각에 승낙했다.
구름이 가듯 시간이 흘러 약속한 두 달의 마지막 날이었다. 얼마나 자신의 처지가 한심하고 비통했겠는가. 저녁에 소주를 사서 반병을 한 번에 마셨다. 처음으로 술을 마신 것이었다. 그리곤 K가 자는 곳으로 다가가 목을 눌렀다. 그녀를 놓치기 싫었다. 목을 눌렀으나 손에 힘을 줄 수 없었다. 죽이고 싶지 않았으니까. 한참을 망설이다가 밖으로 나갔으나 다시 방으로 들어왔다. 이대로 K를 보내야 하는 자신이 참을 수 없을 만큼 미웠다. 방에 걸려있는 넥타이가 눈에 들어왔고 그것으로 두 사람 사이는 갈라졌다. 그는 술에 취한 채 숨진 K를 안고 잠이 들었다.
며칠이 지났는지 몰랐다. 잠을 깨고 보니 여자의 입에서 피가 흘렀다. 날짜를 세어보니 사흘이 지났다. 배고픈 것도 모르고, 내처 잠만 잔 것이다. 몸은 깨고 싶었지만, 정신이 이를 말렸던 것 같았다. 겨울이어서 시체는 부패하지 않았다. 그는 여행용 가방을 구입해 시신을 넣고, K의 고향집 맞은 편 냇가에 암매장 했다. 그로부터 그는 매일 여자의 무덤 앞에서 K가 좋아했던 사이다를 부어놓고 대화했다. 그가 살인범으로 체포되는 날까지….
눈이 사시라고 마음까지 삐뚤겠는가
K가 죽은 뒤 그의 삶은 뒤죽박죽 그 자체였다. 과거의 그와 완전히 결별한 채, 그는 당시 가장 비싼 자동차를 구입하고, 운전기사도 고용했다. 수중에 있는 돈이 떨어질 때까지 그는 미친 사람처럼 써댔다.
돈이 떨어지자 그는 고향친구와 범행을 계획했다. 초등학생 아들을 둔 과부를 사귄 그는 돈을 빼앗기 위해 여자도 죽이고, 그 여자의 아들도 죽였다. 공범마저 살해했다. 증거를 없애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K의 무덤 앞에서 살해 혐의로 체포됐다.
그가 수감된 경찰서에 가보니 Y는 사흘 동안 단식 중이었다. 형사에게 물어보니 범죄사실을 털어놓는 것보다 먼저 자신의 시신을 기증하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우선 그를 설득해 밥을 먹여야 할 것 같았다. 안 먹는다고 버티는 그에게, 애인과 함께 먹었던 음식은 무엇이냐고 물었다. 부대찌개라고 했다. 부대찌개를 먹으며 지난 과거를 들었다. 삶을 포기한 Y였다. 두려움이 없었다. 만약 경찰에 잡히지 않았다면 계속 살인을 저질렀을 가능성이 높아보였다. 맹할 정도로 순진했던 Y는 인생을 포기한 순간부터 야수로 돌변한 것이다.
태어날 때부터 엄마의 부재를 경험하고 아버지나 계모로부터 사랑을 받지 못한 Y. 중학교 때부터 가출한 탓에 그는 마음을 털어놓는 친구도 없었다. 의지할 사람은 오직 자신뿐이었다. 독일의 화학자 리비히는 “식물이 자라는데 한 가지의 영양소가 부족해도 제대로 자라지 못한다”고 밝힌 바 있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사랑이란 요소가 결핍되면 육체는 성장해도 정신은 성장하지 못한다. 그에게 처음으로 다가온 사랑에 어쩔 줄 몰라 했고 결국 살인으로 얼룩진 세월을 보낸 Y는 지금 종교에 귀의해 모범수로서 생활하고 있다.
덩치가 조그맣고 왜소한 20대 중반의 W. 그는 태어날 때부터 눈이 사시였는데, 내가 보기에도 심각했다. 그는 “어머니가 임신했을 때 술을 많이 마신 탓에 사시로 태어났다”고 원망 섞인 말을 토해냈다. 아버지는 그가 크는 것을 보지 못하고 일찍 세상을 떠났다. 생활은 어머니 혼자 도맡아야 했고, 가난한 탓에 눈 수술은 생각지도 못했다.
눈이 삐뚤어졌다고, 마음마저 삐뚤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세상은 그를 평범하게 대하지 않았다. 학교에서 친구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했다. 억지로 학교를 다니다가 그는 중학교 3학년 때 자퇴하고 만다. 집을 떠난 뒤 그는 남의 집 농사일을 거들고, 염전에서 소금도 캤다. 싱크대 운반 등 힘든 허드렛일도 했다. 배운 것이 없으니 직장을 전전했고, 친구도 생기지 않았다. 사람은 부모의 슬하를 떠나면서 사회화 과정을 겪는데, W는 온통 부정적인 경험으로 사회화 과정을 밟았다. 그를 업신여기는 사람들 속에서 그는 사람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조금씩 키워갔다.
W의 상처를 건드린 여자
20대 중반 무렵 그는 온라인 게임을 통해 한 여자를 알게 됐다. 서로 얼굴을 모른 채 단어만을 주고받았고, 애정을 키웠다. W는 만나고 싶었으나 자신의 눈을 본 그녀가 어떻게 생각할지 자신할 수 없었다. 자신의 모습을 이해해 줄 것이란 희망이 생겼다가도 자신을 싫어할 것이란 절망 속에서 신음했다. 그러다가 어느 날 둘은 만났다. 아니나 다를까, 그 여자는 W를 보자 표정이 일그러졌다. 예상대로였다.
그러나 여자는 생각이 깊었다. W를 그냥 돌려보내지 않고, 함께 PC방에도 갔고, 집이 멀어 되돌아갈 수 없는 그에게 여관도 잡아주었다. 동정하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여관방에서 함께 TV를 보고 12시쯤 되자 여자는 W에게 다음 날 아침에 다시 오겠다고 약속하고 돌아갔다. 그는 방에서 뒤척거리며 그 여자가 자신을 좋아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다음 날, 여자가 약속대로 여관방으로 돌아오자 W는 작심한 듯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너를 좋아한다. 사귀어 보자.” 너무 설익은 고백이었다. 여자는 단호하게 “싫다”고 했다. 실랑이가 벌어지고, 몇 차례 고성이 오가는 듯 하더니, 여자는 W가 가장 아파하는 상처를 건드렸다. “나는 사팔뜨기는 싫다.”
이 말을 들은 W의 생각은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강간을 해서라도 이 여자를 내 것으로 만들어야겠다’며 완력을 쓴다면 여자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다. W는 자의적으로 판단하고 있었다. 평소 남에게 이해받지 못한 사람은 남을 이해하지도 못한다. 그가 그랬다. 여자가 완력에 못 이겨 성추행을 당하자, 경찰서에 신고하겠다며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
그는 순간, 씻을 수 없는 행동을 하고 만다. 막상 여자를 죽이고 나니 겉잡을 수 없는 분노의 감정이 물밀 듯 몰려왔다. W는 살인도 모자라 사체를 훼손했다. 정신없이 피해자의 지갑을 챙겼고, 지갑에서 빼낸 신용카드로 도망자 생활을 유지했지만 결국 검거됐다.
평생 가슴에 한(恨)이 됐던 사시. 삶에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었지만 W는 살인하기 전까지 마음이 삐뚤어진 사람은 아니었다. 우리가 그를 비난하고 손가락질하자 그는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삶의 터를 벗어날 수밖에 없었다. 우리 사회는 때로 인정이 많은 것 같으면서도, 나와 다른 사람에 대해선 잔인하리만치 냉혹하다. 그는 범죄자의 길로 들어서지 않을 수도 있었다. 사람들로부터 고립된 것이 문제의 발단이었다.
결과만 갖고 그를 지탄할 수는 없었다. 물론 피해자가 생겼지만, 사실 그 피해자는 살인자와는 전혀 관계가 없었다. 배타적인 사회에서 피해자는 사건과 전혀 관련이 없는 사람일 수 있다는 사실에 몸서리가 쳐졌다.
“나는 없는데, 너희들은 있어?”
X는 후천적인 콤플렉스로 범죄를 저지른 경우다. ‘광명시 협박 사건’의 피의자 X는 30대 초반의 여성이었다. 머리가 영리한 사람이었다. 어릴 때 꿈인 기자가 되고 싶어 대학에 진학하길 원했지만, 그의 아버지는 권위주의적이었고 억압적이었다. “여자가 고등학교만 졸업하면 됐지”라는 아버지 때문에 X는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것으로 학창시절을 마감했다.
머리가 좋은 그는 국내 유명 신문사에 전산직 여사원으로 취직했다. 그러나 대학에 가지 못했다는 콤플렉스는 그를 떠나지 않았다. 직장 상사로부터 꾸중을 들을 때면, 그는 속으로 ‘내가 대학을 나왔다면 이런 모욕은 당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모든 문제를 대학에 가지 않은 것으로 돌렸다. 그리곤 자신을 학대했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 건전한 인격으로 성장할 수 없다. 원만한 대인관계를 맺지 못하고, 사람을 회피한다.
중매를 통해 결혼했지만 결혼생활은 불만투성이였다. 남편이 아버지처럼 위압적이고 퉁명스러웠기 때문이었다. 직장생활이나 부부 관계 모두 문제가 생기자 그는 더욱 삐뚤어져갔다. 그러던 어느 날, 화창한 봄날에 베란다에서 밖을 쳐다보던 X의 눈에 한 부부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커플 티를 나란히 입고, 남편이 유모차를 끌고 가면서 행복하게 나들이 하는 모습이었다. 얼마나 부러웠는지, 자신의 처지가 한심하게 느껴졌다. 남편이 원망스러웠고, 자신을 콤플렉스에 시달리게 한 아버지가 한탄스러웠다. 나는 없는데, 남들은 있다는 것이 견딜 수 없었다. 그는 부러움을 넘어 그들에 대한 증오로 감정을 발전시켰다.
‘저 부부는 어디에서 사는 것일까.’ 호기심은 엉뚱한 방향으로 흐르고 있었다. 추적해보니 건너편 아파트에 살고 있었다. 그때부터 X는 부부에게 협박 편지를 보내기 시작했다. 편지로 성이 차지 않자 협박 전화도 걸었다. “남편이 바람을 피우고 있다. 나는 당신 남편의 애인이다. 내가 당신 남편을 더 좋아한다. 너는 껍데기일 뿐이다.” 가시 돋친 말로 가득한 편지는 그 부부에게 날벼락 같은 것이었다. 이 같은 편지를 받은 부인은 처음엔 남편을 의심했지만, 사실이 아니었다. 경찰에 신고했지만 범인이 잡힐 리 없었다. 누가 이런 편지를 보내는지 짐작이나 할 수 있었겠는가. X와 그 부부는 어떤 관계도 없었기 때문이다.
협박편지는 계속 날아들었다. 여자에겐 “죽이겠다, 그 남자는 내 것이다. 남편에겐 얘기하지 말라”고 했고, 남자에겐 애인처럼 “사랑한다”고 썼다. 이렇듯 공포 분위기를 조성해 놓고, X는 부부가 사는 집으로 전화를 걸어 여자가 받으면 아무 말 없이 끊어버렸다. 당하는 사람 입장에선 미칠 노릇이었다. 심리적 고통은 커져만 갔다. 그 집 아이들에게도 비슷한 편지를 보냈으니, 지금 생각해도 X의 수법은 잔인하기 이를 데 없다.
내면은 여자, 외면은 남자
견디다 못한 부부는 이사를 갔다. 그러나 협박편지와 전화는 멈추지 않았다. 이사한 집까지 알아낸 X는 광적인 편집증으로 끊임없이 그 부부를 괴롭혔다. 보낸 편지만 24통, 부부는 거의 죽을 지경이었다. X는 집에 도청장치까지 해놨다며 윽박질렀고, 부부의 은밀한 사생활을 비디오로 촬영해 아파트 주민에게 공개하겠다는 말까지 서슴지 않았다.
그러나 꼬리가 길면 잡히듯 X는 결국 경찰에 체포됐다. 체포 당시, X의 남편은 부인이 그런 짓을 하고 있으리라고는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고 털어놨다.
X는 콤플렉스 때문에 정신분열적 경향성을 갖고 있다. 그 같은 상태에서 결혼하고, 게다가 남편과 관계가 무난하지 않아 그 경향은 더욱 증폭됐다. 남들의 행복한 모습은 자신에겐 고통이었다. 고통을 이겨내려면 남의 고통을 보는 수밖에 없었다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이것이 당시 X가 살아가는 방법이었다.
X를 직접 만나보니 예상대로 얼굴빛은 굉장히 어두웠다. 마음이 괴로웠으니 인상인들 펴질 수 있었으랴. 찌그러진 인상은 마음을 곪게 하고, 삐뚤어진 행동으로 이어진다. 번뇌가 심했던 탓인지, 아무 말 없이 들어주자 X는 순순히 범행 일체와 숨겨놓은 콤플렉스까지 털어놓았다. 인생에서 가장 고마운 사람이 누구냐고 묻자 그는 주저 없이 나를 가리켰다. 얼마나 할 말이 많았는지 그 한 마디로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이런 사람이 흘리는 눈물은 진짜 참회의 눈물이다.
그의 얘기를 듣고 나도 반성하는 것이 없지 않았다. 무뚝뚝한 경상도 사람을 남편으로 맞은 아내가 때로는 외로웠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내가 잘못했다”고 인정해주고, 따뜻한 말이라도 건넨다면 딱딱해진 관계는 눈 녹듯 녹을 것이다.
30대 초반의 트렌스젠더 피의자, Q. 특별히 가정에 문제가 있어 보이지는 않았다. Q는 위로 세 명의 누나를 둔 막내였다. 어렸을 때부터 누나들을 따라 화장도 하고 치마도 입었다. 부모는 Q가 누나를 따라 노는 것쯤으로 여겼다. 그러나 중학교에 입학해서도 여자처럼 노는 것을 걱정한 부모는 그를 미션스쿨에 보냈고, 남자들만 생활하는 기숙사에 보냈다.
Q는 커가면서 자신의 내면에 여성이 되고 싶은 욕망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중학교 다닐 때만 해도 동성인 남학생들과 함께 지내는 것이 견딜 만 했지만 고등학교에 올라가자 그렇지 못했다. 중퇴할 수밖에 없었다.
돈이 많았으면 여성 호르몬 주사도 맞고, 여성이 되는 수술도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생활이 어려운 탓에 호르몬 주사조차 제대로 맞지 못했다. 내면은 점차 여성화되는데, 주사를 한 동안 맞지 않으면 남성으로 돌아왔다. 심리적 갈등이 너무 심했다. 주사 맞을 때는 여자로 보이니까 유흥업소에서 고용해줬다. 그러나 주사마저 맞지 못하고 남성으로 돌아올 때면 유흥업소마저 취직하기가 어려웠다.
재벌그룹 비서 출신 L의 경우
손님으로부터 인격적으로 무시당하는 일도 잦았다. 항문 성교를 강요받기도 했다. 여자로서 그들과 대화하고 싶었지만, 이들의 빗나간 요구 때문에 그럴 수가 없었다. 어떻게든 돈을 벌어 여자가 되고 싶었다. 생활정보지를 보고 유흥업소를 찾아 전전했고, 잠시 일하다가 쫓겨나는 일이 반복됐다. 굶기를 밥 먹듯 했고, 심지어 노숙도 했다. 집에는 돌아갈 수 없었다. 형편이 어려웠기 때문이다.
어느 날, 생활정보지를 보고 한 주점에 전화를 걸었다. 여자라고 생각한 술집 여주인은 “함께 생활하면서 일 하자”고 제안했고, 오갈 데 없는 그는 좋다고 했다. 그러나 열흘이 넘도록 함께 산 여주인은 그의 행동에서 수상한 점을 눈치 채고는 “주민등록증을 보자”고 요구했다. 결국, Q는 사실을 털어놓았다. 그러자 여주인은 깜짝 놀라며 그를 쫓아냈다.
쫓아내는 그에게 Q는 “언니, 내 말 좀 들어보세요. 아직 짐도 못 챙겼어요”라며 사정 하자 여주인은 문을 열어주었다. 그러나 그게 마지막이었다. 다시 방으로 들어온 그에게 여주인은 듣기에도 민망할 정도의 욕을 퍼부었고, Q는 참지 못했다. 순간의 분노를 억제하지 못한 것이다. 장롱에 시체를 유기한 채, 그는 핸드백을 뒤져 돈을 훔쳐 달아났다. 하지만 오래 가지 않아 탐문 수사 끝에 Q는 체포됐다.
여러 사건을 보면서 마음 아픈 적이 있었지만 이번 사건처럼 가슴이 아린 경우가 없었다. 무슨 말로 위로를 해야 할지 몰랐다. Q는 “과장님, 큰일입니다. 감방 가면 여자로 돌아가지 못해요”라고 하는 그의 말을 들으면서 나는 난감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그 사건이 터진 뒤, 트렌스젠더임을 당당하게 밝힌 하리수씨가 등장했다. 이들의 삶을 긍정적으로 볼 수 있는 인식의 틀을 넓혔다는 점에서 다행이다. 그러나 하리수씨처럼 조건이 좋은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다. 술집을 전전하면서 호르몬 주사 맞는 것으로 위안을 삼는 여장 남자도 많다. 이들에겐 따뜻한 말 한 마디가 필요하다. 있는 현상을 부정할 수는 없다. 생리적 현상이기 때문에 정상과 비정상으로 이들을 갈라놓을 일이 아니다. 한 사람으로 당당하게 살 수 있도록 우리 사회가 분위기를 조성할 필요가 있다.
30대 중반의 여자 L씨는 유명한 재벌그룹 회장의 비서 출신이었다. 일을 아주 잘했고, 그 덕분에 유능한 남편도 만났다. 그에겐 그늘이 하나 있었는데, 아버지가 자주 외도했다는 것이었다. 그의 어머니는 그 같은 아버지의 행동으로 곁에서 보기에도 지겹도록 고생만 했다. 불행은 불행을 낳는 것일까. 그의 남편은 능력은 뛰어났지만 친정아버지처럼 외도를 일삼았다. 참을 수 없었다. 이혼을 결심했고, 그 스트레스로 중풍 증세까지 앓았다.
아들이 인생의 전부
불쌍한 처지였다. 내가 만났을 때 L씨는 장애인 보조금으로 생활하는 초라한 행색이었다. 인생의 급전직하란 이런 때 쓰는 표현일까. 그토록 유능했던 L씨가 의지하는 것은 이제 오로지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들뿐이었다. 그가 인생의 전부였다. 모든 인생을 아들에게 걸었다. 사랑이 지나치자 집착으로 변했다. 누구라도 그의 아들에게 해코지하면 아이든 어른이든 가만 두지 않았다. 상대가 기겁을 할 정도로 비난을 퍼붓고 싸웠다.
피해의식에 사로잡힌 그는 자신에게 비판하는 사람을 참지 못했고, 자신을 괴롭힌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용서하지 않았다. 뭐든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면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었다. 아이들이 싸우다 울고 들어오면, 보통 떼어서 말리는 것이 상식이다. 그러나 L씨는 그 아이 집을 찾아가 듣기에도 민망한 욕을 하면서 싸웠다. 동네에선 이미 싸움닭으로 소문이 자자했다.
문제는 갑작스럽게 터졌다. 어느 날, 아들이 옷에 피를 묻혀왔다. 어머니의 성격을 잘 알고 있는 아들은 딸기 쨈이 묻었다고 둘러댔다. 그러나 딸기 쨈을 사서 옷에 묻혀보니 색깔이 달랐다. 이웃집 아이들에게 맞은 것이었다. 그러나 그 아들은 이웃집 누나에게 맞았다고 거짓말을 했다. 직장에 다니는 처녀였다. 갑자기 눈이 뒤집혔다.
범죄는 증오하지만 동기는 동정한다
그는 이웃집 아가씨가 퇴근하기를 기다렸다. 손엔 칼을 들고 있었다. 원래 계획은 얼굴에 살짝 상처를 주는 것이었다. 그러나 막상 그 처녀가 L씨의 칼을 피하다가 그만 목을 찔려 그 자리에서 숨졌다. 어처구니없는 일이었다.
수많은 살인 사건을 추적하면서 나는 죽는 사람과 죽이는 사람과 관계는 ‘딱 떨어지는’ 수학공식이라고 생각한다. 태어나는 때가 있듯, 죽는 때가 있다는 것이 내 신념이다. 자연계도 마찬가지다. 익은 감도 떨어지지만, 설익은 땡감도 떨어진다. 중요한 것은 살아있는 이 순간이라는 사실이 절절하게 다가오는 사건이었다.
범죄심리학적으로 이런 유형의 범죄를 개인적 이유에 의한 보복살인이라고 부른다. 그런 이유로 살인까지 저지르겠냐고 하겠지만, 피의자의 눈으로 보면 당한 것 이상으로 보복을 해야 더 이상 피해를 당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L씨가 범죄를 저지른 것은 피해의식과 함께 편집증적 성격이라고 봐야 한다.
아들을 집에 두고 수감된 L씨는 나와 만난 자리에서 “아이 걱정 때문에 잠을 잘 수 없다”고 호소했다. 우리의 삶은 범죄가 발생하기 전까지만 정상적인 상태다. 어떤 계기로 조금만 삐뚤어지면 범죄로 직결된다. 이것이 내가 범죄는 증오해도, 범죄의 원인은 동정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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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ohnu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