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대 학생들은 좋겠습니다. 이런 선생님과 함께 공부할 수 있어서...
뒤늦게 발견한 (2006년 중앙일보 게재) 박명림 교수의 글입니다.
역사비평 2008년 가을호에서 박 교수께서 김대중 전 대통령과 토론하는 걸 읽었을 때, 그의 인터뷰 능력이 탁월하다고 생각했는데(또 성실하시고...) 이 글을 나중에 찾아 읽어보니,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겠네요. 보기 드문, 아주 훌륭한 글입니다. 박 교수님을 미래학자로 임명합니다~

다음은 그가 쓴 글입니다. ------------------------------------------------------------

매년 3월이면 늘 대학 신입생들과 나누는 얘기가 있다. "어떤 비전을 가질 것인가."

어떤 꿈과 소망을 갖느냐에 따라 대학시절은 그들의 삶과 사회의 미래 향방을 좌우한다. 비전은 자기와 공동체를 바꾼다. 비전의 크기가 오늘의 준비와 마음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기실현을 위한 개인적 비전은 삶을 움직이는 근본 동력이 된다. 그러나 개인적 비전을 사회적 비전에 근접시키려는 헌신 의지 역시 똑같이 중요하다. 개인적 꿈은 사회적 요구와 만날 때 비로소 생명력을 갖는다. 마틴 루터 킹은 "인간은 자신의 좁은 사적 이해(利害)를 넘어 모든 인류에 대한 더 넓은 관심으로 나아가기 전까지는 (참된) 삶을 시작한 것이 아니다"고까지 말한다. 두 비전이 일치, 개인성취와 사회발전이 병진(竝進)하는 삶은 가장 행복한 삶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공부의 목적은 인간과 사회의 부조리와 고통을 치료, 자기와 타인을 '함께' 행복하게 만드는 데 있다. "학문의 유일한 목표는 인간 현존의 노고를 덜어주는 데 있다"(브레히트)는 언명은 공부의 한 지침이 된다. 지식을 인간, 특히 힘들고 어려운 사람들을 위한 사랑의 도구로 사용해야 한다는 점이다. 특별히 인간 비극을 초래하는 고안들이 인간의 지식발전의 산물이라는 점을 명심, 반복되는 빈곤.전쟁.독재.환경문제에 대해 인간본성과 사회제도에 대한 성찰을 통해 개인의 행복과 바람직한 사회적.지구적 장치가 만날 수 있는 접점을 지혜롭게 모색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럴 때 기성의 행태.제도.이념의 밝은 면은 키우되, 부조리한 요소에 쉽게 굴복하고 안주해서는 안 된다. 개인적 안락이 도전의지를 박탈, 창조를 위한 모험을 불가능하게 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삶을 통해 우리를 감동시키는 한편 사회발전에 크게 헌신한 인물들은 고난 속에 사회적 비전을 실현하려 고투한 존재들이었다. 거기에서 우리는 많은 싹을 틔우는 희생이 손해가 아닌 소망을 위한 밀알임을 깨닫는다.

개인과 사회를 위한 공통의 '비전 만들기'를 위해 평생 반복하는 세 가지 만남을 강조하고 싶다. 어떤 '사람' '책' '상황'을 만나느냐에 따라 삶의 방향은 크게, 때론 완전히 달라진다. 사람과 상황과의 만남이 제한된 대학 시절엔 공부와 독서가 미래를 좌우한다. 그때 '질문'은 가장 중요한 공부방법이 된다. 문제(제기)가 없다면 해답을 찾기 위한 노력은 불가능하다. 둘째, 기존시각과 사회에 대한 '비판'은 공부의 요체가 된다. 비판이 없다면 대안 모색은 물론 과학적 분석으로 안내하는 이성적 사고능력을 기를 수가 없다. 셋째, 세계와 전체에 대한 통찰이다. 각고의 연마를 통해 한 분야의 전문가가 돼야 하나, 전문성의 울타리에 갇혀 인간.사회.세계를 보지 못해선 안 된다. 인간 없는 지식, 세계 없는 우리는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럴 때 세상의 직업에는 '의사'와 '디자이너' 둘이 존재한다. 의사는 개인과 사회의 질병을 진단하고 치유한다. 디자이너는 삶과 사회를 구상하고 건설한다. 신체의 질병을 고치는 의사에 더해 우리는 영혼.교육.제도를 치료할 많은 '사회적 의사'를 필요로 한다. 동시에 그런 분야의 대안을 제시하고 건설할 '사회적 디자이너'를 필요로 한다. 진단 없는 대안은 없다. 따라서 의사와 디자이너는 사실 하나인 것이다.

간디는 "내 삶이 곧 나의 메시지"라고 했다. 우리 모두 4년 동안 잘 준비해 개인적 비전을 사회와 세계의 비전으로 근접시켜 사회와 세계를 향한 좋은 의사요 좋은 디자이너가 되자. 그리하여 우리의 삶이 다른 영혼과 미래에 조금이라도 좋은 향기와 희망을 주는 메시지가 되도록 노력하자.

박명림 연세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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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3/20 14:07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글입니다

    • 미래도둑 2009/03/21 11:37  address  modify / delete

      반갑고, 고맙습니다. 자주 들러주셔서...예, 제 블로그 갖다 쓰셔도 좋습니다. 좀더 자주 글을 올려야겠네요...

  2. 이승환 2009/03/20 14:36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오오, 열라 멋진 글이네요, 잘 지내시나염?

  3. 한빛 2009/03/21 02:36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탄복할 수 밖에 없네요. 글의 격이 느껴집니다.
    학자인 동시에 실천가로서 존경하는 교수님 중 한 분입니다.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출신이신데 저도 거기에서 배우고 싶어
    지원을 했다가 고배를 마셨던 기억이 납니다.

    • 미래도둑 2009/03/21 11:43  address  modify / delete

      하버드 철학과 교수 중에 유학을 가르치는 뚜웨이밍(Tu Wei-ming) 교수님이라고 있죠? 누군가 그 분에게 학자와 실천가의 이분법적 맥락에서 어떤 질문을 던졌을 때(질문이 생각 안 남), 그분 대답이..."유학을 구조적으로 연구하는 것만 학문이고, 유학으로부터 삶의 교훈을 배우는 것을 학문이라고 하지 않는다면 그건 슬픈 일"이라고 했다는데...전적으로 동의합니다. 박 교수님 말씀도 비슷한 맥락이라고 봅니다.

  4. Here 2009/03/23 09:13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좋은 글 읽고 갑니다.

    그 중에서 특별히 두가지 크게 공감하는 부분이 있네요.

    "... 많은 싹을 틔우는 희생이 손해가 아닌 소망을 위한 밀알임을 깨닫는다"

    "세계와 전체에 대한 통찰"

    첫번 째는 진정 복된 삶을 살아가고자 원하는 많은 이들에게 복의 원리를 알려주는 길잡이 같고

    두번 째는 '컨트리 꼬꼬'에서 세계화를 통한 Global Mind 를 갖게합니다

    그저께 웃음경영(FUN Management)으로 꽤 알려진 Jinsoo Terry 라는 분을 만났는데

    '미국인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웃기는 한국 여자' 라고 스스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 분이 인생의 성공요인 두가지를 들려 주더군요.

    "재미있게 사는 것" & "세상을 아는 것" 이었습니다.

    관련 자료 링크: http://blog.naver.com/lszeelee/110044549193

    • 미래도둑 2009/03/23 13:03  address  modify / delete

      Here님, 코멘트 감솨~ 덕분에 알려주신 진수테리 관련 자료를 읽어보았습니다. 예전에도 들어본 기억이 있었는데, 명지대 교수님 중에 재미경영을 설파하고 다니시는 분 있죠? 김정운 교수님으로 기억하는데...목적지향적으로 살기 때문에 즐기지 못하는 한국인에게 적절한 말씀을 해주시는 분이죠. 이를테면, 네잎클로바(행운)를 잡기 위해 세잎클로바(행복)를 희생하는 삶의 악순환을 끊고자 하는 시도랄까요. 진수테리의 자료에선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습니다. 자신만의 독특함을 찾으라고 하는데, 제 생각으론 자신만의 독특함을 스스로는 찾을 수 없습니다. 더구나 독특함을 찾는 과정에서 경험하는 행복, 즐거움은 남과 함께 했을 때 가능합니다. 창의성이란 말은 나의 경험과 너의 경험이 만나 다른 경험을 만들어내는 과정이라고 봅니다. 이런 점에서 남과 대화하는 능력, 남과 차이를 발견하는 것보다 공통점을 발견하는 능력, 나의 독특함을 발견하는 것보다는 남의 독특함을 발견해주는 능력이 한국인에게 더 필요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 Here 2009/03/24 12:00  address  modify / delete


      WOW, It's amazing ! You are the best !

      영어회화에 자신 없어하는 한국사람이 외국인이 영어로 얘기하는 걸 듣고 뜻을 몰라도 이말만 앵무새처럼 하면 상대방으로부터 '영어 잘한다'는 말을 듣고 자신감을 가질 수 있는 해법이라고 진수테리님이 들려주는 아이디어입니다.

      녹녹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은 되지만, 영어로 대화를 잘할 수 있는 그녀만의 독특한(unique) 해법이라고 생각합니다.

      남과 잘 어울리고 함께하는 가운데 행복을 찾을 수 있는 나름대로의 성향과 해법을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미 그나름의 독특함을 가진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남과 잘 대화하는 것이 정말 어렵다고 생각되기 때문이지요

    • 미래도둑 2009/03/25 03:35  address  modify / delete

      Sure! I agree with you!!

  5. 아크몬드 2009/03/31 11:38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좋은글잘보고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