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포스팅에서 미래의 일은 헤아리는 능력으로 알 수 있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제가 써놓고도 무슨 말인지 몰라 시간만 나면 그 의미에 대해 생각해봤습니다.
오늘 아침에 한 친구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면서 나름대로 뭘 의미하는지 정리했는데요.
(그 친구와 저는 거의 매일 아침에 카페에서 만나 영적인 수다를 떠는데요.)

헤아린다는 건, 혹 '공감하는 능력'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요?
전혀 다른 말을 한 것처럼 보이는 두 사람의 말에서 공통점을 찾아내면,
그 두 사람은 그 공통점을 두고 대화를 시작할 수 있습니다.

수학은 이런 식의 공통점을 발견하는 학문으로 생각해볼 수 있는데요.
1과 2를 더하거나 뺄 수 있는 건, 둘의 존재가 어떤 공통적인 토대 위에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知라는 건, 차이를 발견하는 능력이고...
數라는 건, 공통적인 토대를 발견하는 능력이라면,
...그럴 듯 한 것 같은데요.

끝으로 정리되지는 않았지만, 그 친구와 나눴던 대화 중 일부를 써봅니다.
數=image=dream, 꿈=futures studies=parallel with God

(첨언하면) 공감하려면, 내 책상 주위에 여러 의자를 놔둬야하겠죠? 여러 사람이 앉을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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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Lane 2008/01/18 22:36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포스팅 내용과는 상관없는 생뚱맞은 댓글이 될 수도 있겠으나,
    미래도둑님의 글을 일다보니 문득 생각이 나서 한 말씀 남깁니다. ^^

    최소한 미래도둑님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를 명확히 알고,
    또한 아는것에서 그치지 않고 적극적으로 나서서 배우고 노력하시는 모습이
    참으로 부럽습니다.

    사실 저를 포함한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여러가지 핑계로 나 스스로를 안주시키기에 전력을 쏟아붓지 않나 생각됩니다.
    그런면에서 참으로 부럽고 존경스럽습니다.

  2. 미래도둑 2008/01/19 04:14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레인님, 고맙습니다.
    저처럼 꼭 어딘가를 떠나야하는 것은 '물론' 아니겠지만,
    제 경우 떠날 때, 주위 사람들을 설득했던 논리는,
    우리는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생각지도 못한 시간(혹 한 시간 뒤?)에 "죽을 수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놀러가다가도 죽고, 소방훈련하다가도 죽습니다. 거기엔 이유가 없어요.
    사람들은 꽤 오랫동안 살 것으로 예상하고, 정말 하고 싶은 일을 미루고, 미루지만...그러다가 그냥 갑니다.
    이런 얘기를 주위에 하면서, 사실 저를 설득하게 됐죠. 저도 긴가민가했거든요. 지금 하느냐, 좀 미루느냐로.

    오늘, 방향을 정하는 것이 좋습니다. 생각난 김에 결심하는 거죠. 당장 뭘 하자는 얘기가 아니라, 결심을 하자는 거죠. 근데, 신기한 건, 그렇게 선택한 길이 사실 생각보다 무지 넓고, 재밌고, 거기에도 친구들이 있다는 겁니다.
    레인님을 위해 당분간 비슷한 내용의 포스팅을 붙여보겠습니다.

  3. 이승환 2008/01/21 21:26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방향 정하기가 참 힘든 것 같습니다. 방향을 정하려면 결국 최종 목표는 아니더라도 중간 거점에 머물러야 하는데 그 곳이 어떤 곳인지 발을 딛기 전에 알 수가 없으니까요. 그나마 발을 딛는 것조차도 맘대로 되는 것도 아니고...

  4. 미래도둑 2008/01/22 05:41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이승환님, 동감합니다. 방향 잡기가 쉽지 않죠...내가 어디로 가야하는지 정하기란, 참으로 어렵습니다. 근데 발을 딛어야 그곳을 알 수 있다는 말씀은 참으로 옳습니다. 발을 딛어보지 않으면, 그곳은 절대 나에게 어떤 곳인지 말해주지 않습니다. 그곳과 관계를 맺지 않고, 그저 경험하려고 하면, 그곳은 진실을 말해주지 않습니다. 그래서 발을 디뎌보라는 겁니다. 예전에 인디아나존스라는 영화에서 성배를 찾으러가는 주인공이 마지막 관문을 앞두고 고민한 장면이 떠오릅니다. 낭떠러지를 건너 저편으로 가자면 날아가는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그 주인공은 그냥 낭떠러지에 발을 내딛습니다. 그랬더니, 투명한 다리가 만들어지는 겁니다. 방향이 맞고 틀림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내가 오늘 결심한 방향을 믿고, 다리를 내 딛는 행동이 중요합니다. 저는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5. 미래도둑 2008/01/22 05:52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제가 존경하는 분께서 "헤아림은 증오를 낳는다"고 말씀하셨더군요. 증오를 낳는 원리에 대해 여러번 말씀을 들었는데도, 깨닫지 못하고 또 증오를 낳는 메커니즘을 추구하고 있구나하는 반성이 듭니다. 그러나 저는 위에서도 말씀 드렸듯, 공감하는 능력을 갖기를 소망합니다.
    한국인은 관계지향적이면서도 서로에 대해 공감하는 능력이 떨어지는 이유에 대해 깊이 공부하고 싶습니다. 그건 아마도 평가시스템이 공정하지 않아서 그런 것 같은데요. 개인주의를 고집하는 미국사회도 '계약관계'라는 것이 있습디다. 한 번 맺으면, 그걸 충실히 이행하려고 노력합니다. 자신이 사회를 위해, 팀을 위해, 회사를 위해 어떤 공헌을 할지 정하는데, 계약이라는 걸 끌어들입니다.
    우리에겐 딱 들어맞지 않는 문화인데, 그럼...우린 어떻게 공감하는 능력을 키울 수 있을까요? 우리의 방식은 뭘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