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의미

from 잡담잡설 2007/03/07 10:13


오랫동안 적조(積阻)했습니다...
다들 잘 계시죠?

지난해 말부터 저는 주변의 숱한 죽음을 보아야 했습니다.
전쟁터에 갔다온 사람처럼 말하게 됐는데. 그런 건 아니고요.
할머니 두 분이 돌아가셨고, 처 외삼촌이 돌아가셨고, 친구 아버님이 돌아가셨고, 선배 장모님이 돌아가셨고...
서울로, 청주로, 목포로, 나주로...
거짓말 조금 보태면 일주일에 한 번은 장례식에 갔다왔다고 할까요.

성경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결혼식에 가는 것보다 장례식에 가는 것이 낫다."
지혜의 왕 솔로몬은 "슬픔이 웃음보다 나은 것은 얼굴에 근심함으로 마음이 좋게 된다"고 한 적이 있고요.

이제서야 이 말이 이해가 됩니다.
사는 게, 쉬운 건 아니잖아요. 무뚝뚝한 제 후배는 제게 "저 간신히 살고 있어요"라고 말하기도 했는데.
웃는 일도 많지만, 웃지 못할 일은 더 많습니다.
가까스로 사는 판에 웃음보다는 슬픈 표정이 더 편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이 때문에 웃어야 하는 결혼식보다 웃지 않아도 되는 장례식이 더 편할지 모르겠습니다.

얼마 전에 외할머니가 돌아가셔서 꼬박 사흘을 장례식장에서 보낸 적이 있습니다.
미수에 돌아가셔서 호상이었기 때문에 그리 슬퍼할 일은 아니었고요.
오랫만에 친척들을 만나 사는 얘기를 나눴습니다.
다 아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얘기를 해보니 내가 알던 사람들이 아니더군요.
마치 처음 보는 사람이란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만큼 서로를 몰랐던 거죠.
장례식이 결혼식보다 낫습디다...

외할머니의 주검. 눈을 꼭 감은 얼굴을 내려다 봤습니다.
염쟁이가 능숙하게 수의를 입히는데, 할머니는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았습니다.
힘 없는 팔, 대응하지 않는 몸...
주위에선 가족들의 오열.

죽음의 모습은 우리를 순간 멈추게 합니다.
'나는 잘 살고 있는가...' 되돌아보게 합니다.
20년 동안 염을 한 분이 이렇게 말 합디다. "죽음은 늘 우리 곁에 붙어있다."
오늘 죽을지, 내일 죽을지 모르는 게 인생인데.
요즘 노후대비 금융상품 광고 카피를 보면, 마치 100년 200년 살 것처럼 준비해야 한다고 떠듭니다.
역시 결혼식보다 장례식에 가는 게 낫군요.

우린 언젠가 꼭 죽습니다.
그게 언젠지도 모릅니다.
고구려 때는 부모가 자녀 시집, 장가보낼 때 꼭 수의를 싸서 보냈다고 합니다.
선조들은 삶과 죽음은 늘 붙어있다고 본 것 같습니다.
죽음을 곁에 둔다고 재수없는 것은 아닙니다.
죽음을 인식하고 있는 사람만이 오늘...잘 살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때로 힘들 때, 화장터에 가볼 것을 권합니다.
잡다한 감정은 모두 타서 없어지고, 알맹이만 남은 채 다시 삶으로 돌아옵니다.
<사진은 쓰나미로 희생된 스리랑카 주민들 공동묘지,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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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ubject: 재야 은둔 고수 - 추천 블로그 릴레이

    Tracked from Lane'S B급 BLOG 2007/03/14 08:32  delete

    이올린에 '추천 블로그 릴레이'라는 태그로 좋은 취지의 태그 릴레이가 하나 생겼더군요. 최초 어느분(어느 블로그에서 누구라고 읽었는데, 제 기억력이 하루가 한계라... -_-ㅋ)이 제안을 하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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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루돌프 2007/03/07 15:59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오호.. 고구려시대 이야기 하니 ...

    프랑스 어떤 지방에서는 수의 대신 결혼예복을 입혀서 묻는다더군요..
    동서양 끝지방인데 뭔가 통하는게 있네요 -_- 역시 사람사는 동네는 다 비슷한가봅니다..

  2. inuit 2007/03/08 00:08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비슷한 글하나 트랙백하려했는데 안되네요. 티스토리 문제 같아요.
    수동으로 올립니다. -_-
    http://inuit.co.kr/9

    • 미래도둑 2007/03/08 17:12  address  modify / delete

      올려주신 글, 잘 읽었습니다. 애잔한 감정이 듬뿍 묻어난 글입니다. 이누잇님 덕분에 위로를 받습니다. 고맙습니다.

  3. Lane 2007/03/08 10:06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한 말씀 한 말씀 모두 공감이 갑니다...
    정말 장례식에서 배우는 것이 더 많죠...
    잊고 살던 일들도 장례식에서 다시 한 번 뒤돌아 볼 수 있고...
    어쨌거나 미래도둑님도 고생많으셨습니다.

    그리고 트랙백은 저 만의 문제가 아니었나보네요.
    미래도둑님 플러그인 중에 혹시나 '트랙백 추적'인가 먼가 하는 플러그인 있으면 잠시 꺼두셔도 좋을 듯 합니다.
    이리 저리 알아본 결과, 그 플러그인이 켜져 있으면 '티스토리'에서는 트랙백이 안날려 진다더군요. (-_-)ㅋ

  4. hojai 2007/03/08 19:35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동감합니다. 저도..결혼식은 갈 수록 가기 싫어져요. 그런데 ...사진 저렇게 막 쓰면 안돼요. 출처를 밝혀도 저작권 피해갈 수 없습니다.

  5. 라됴 2007/03/09 13:16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공감..합니다.

  6. susanna 2007/03/10 00:13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어떻게 살아야할지, 왜 사는지 모를 때 죽음을 인생의 상담자로 삼으라는 말이 기억납니다. 지금의 상황, 지금의 선택에 대해 죽을 때 후회하지 않을 수 있는가, 스스로 물어보라는 거죠. 혹은 '나는 왜 자살하지 않는가'를 스스로에게 질문해보라는....그 이유가 '가족'이든, '일'이든, 억울해서든....뭔가가 떠오른다면 바로 그게 자신이 살아갈 이유가 된다고요.

    • 미래도둑 2007/03/10 20:17  address  modify / delete

      앗! 제가 며칠 전 후배에게 "자살하겠느냐, 그냥 살거냐"고 물은 적이 있는데... 그 후배가 저에게 "다시 태어날 수 있다면 태어나지 않는 쪽을 택하겠다"고 하자 제가 그렇게 물어본 것이거든요. 그랬더니 그 후배가 자살하지는 않겠다고 합디다. 그래서 그럼 "넌 삶의 의미를 알고 사는 거다"라고 해준 적이 있었는데...죽음을 인생의 상담자로 삼으라는 말씀! 좋~습니다.

  7. tjwjddo 2007/06/27 22:49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살아 가는게 수행이라 했던가요 .장례식은 어떤 윤리인지 이렇게 힘든 절차가 있어야 하는지그냥 자연으로 갔음.저에 짦은 소견이네요

  8. 2007/06/27 22:52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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