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탁월한 스토리텔러 김탁환(현재는 카이스트 문창과 교수)씨의 소설 '방각본 살인사건'을 읽었다.
한창 일로 허덕거리고 있을 때, 어느 지인이 읽어보라고 줬다.
주로 전철 탈 때, 서서 읽었는데 언제 집에 왔냐는 듯 흥미진진했다.
가방 속 소설은 타임머신을 움직이는 열쇠였고, 전철은 18세기 조선시대로 달려가는 그야말로 타임머신이었다.
누군가 2007년 한국의 모습을 18세기 말, 조선의 모습과 닮았다고 했는데.
세종 이후 최대의 치적을 이룬 정조대왕은...
노비제폐지를 주장했던 정약용을 중용했고, 오랑캐 나라인 청나라를 배워야 한다고 주장한 북학파를 주위의 만류에도 영입했다.
문무는 물론 예술을 섭렵했던 정조는 한국의 르네상스를 방불케 할 만큼 모든 방면에서 개혁을 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19세기 초, 조선의 힘으로 근대화의 기틀을 마련하려고 했던 정조가 죽자, 개혁세력으로 등장했던 정약용이나 박지원, 박제가 등 북학파도 몰락한다.
이후 19세기 내내 외척이 조선을 지배하면서, 한반도는 열강의 간섭을 받는 나라로 전락하면서 결국엔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긴다.
지금의 한국이 이와 비슷하지 않느냐는 것이 2007년 한국을 18세기 말 조선에 빗댄 사람들의 주장이다.
선진국의 문턱에서, 한국적인 성공스토리의 마지막 장을 쓰지 못한 채, 2등 국가로, 3등 국가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에서 이런 주장을 하고 있다.
선진국 되는 게 뭐 그리 대단하느냐고 묻는 사람도 있겠지만, 한국적인 성공스토리를 만드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이런 기틀을 마련해야 우리의 후손이 그 토대 위에서 활약할 수 있는 것이다. 리드하는 게 낫지, 따라가는 게 낫지는 않다.
방각본 살인사건은 정조대왕의 개혁이 왜 실패로 돌아갔는지 그 이유를 추적하고 있다.
소설에서 정조와 박제가가 나눈 대화를 보자.
정조: 너는 유생 중 절반을 도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지?
박제가: 그러하옵니다.
정조: 반발을 무마할 수 있다고 보는가?
박제가: 모든 유생이 동의할 수 있는 네 단계를 미리 정하면 됩니다. 먼저 과거에 나아오려는 유생들을 직접 가르친 스승들이 그 문하가 과거를 치를 자격이 충분함을 보증하게 하옵니다. 다음엔 유생이 사는 지방 관장들이 그 사람의 자질과 능력을 시험하옵니다. 이렇게 걸러서 상경한 유생들을 모아 경서를 가지고 또 시험을 치르고, 여기서 합격하면 고시관 앞에서 마지막으로 시험을 보는 것입니다.
이렇게 네 단계를 두면 무턱대고 과거 공부만 하는 유생이 줄어듭니다. 평생 하는 일 없이 놀고먹는 유생이 줄면 그만큼 일할 사람이 늘어납니다. 유생 천 명이 줄고, 농부 천 명이 늘면 굶주린 백성은 없을 것입니다. 유생 천 명이 줄고, 상인 천 명이 늘면 방방곡곡 시장이 서고 돈이 넘쳐날 것입니다. 유생 천 명이 줄고, 장졸 천 명이 늘면 노략질하는 오랑캐를 단숨에 제압할 수 있을 겁니다...
이런 북학파의 주장에 대해 당시 조선의 대신들은 임금의 눈에 들어 과거시험도 보지 않은 출신들이 권세를 얻을 것을 우려했다.
소설에선 이들 대신들이 음모를 꾸미고, 북학파를 제거하려 하고, 정조마저 암살하려 든다.
총 3부작으로 구성했고, 방각본 살인사건은 1부에 해당한다.
나머지 2부와 3부는 집필 중이다.
따라서 정조의 개혁이 실패하고 북학파들이 몰락하게 된 이유에 대해서는 아직 밝히지 않은 상태다.
저자 김탁환은 2002년 초고를 완성하고, 2003년 펴냈다.
김탁환은 노무현 대통령과 그를 보좌하는 386들이 초지를 살려 정치적 성공을 바란다는 뜻에서 소설을 썼다고 고백한 바 있다.
그의 희망대로 됐는지, 안 됐는지...김탁환은 소설을 펴낸 이후로 그에 대한 평가는 하지 않고 있다.
굳이 물어보지 않아도 되리라.
훗날 역사가들은 북학파가 실패한 원인을 '개혁 세력의 수가 부족했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몰랐던 '우물안 개구리' 조선의 중신들은 당파적 이해관계에만 얽혀 앞날을 밝히는 데 실패하고 만다.
당시 실패했든, 그럴 수밖에 없었든...역사의 도도한 물결은 모든 것을 뒤엎었다.
한국은 분명 지금까지는 성공한 나라였다. 해방 후 연간 20%가까이 성장한 나라는 없으리라.
싱가포르를 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성공한 나라로 꼽지만, 그건 도시에 불과하다.
한국처럼 농업을 포괄한 나라의 성공은 아닌 것이다.
그리고 그 성공은 우리가(30대와 40대) 일궈놓은 것도 아니다.
선배들 작품이다.
그럼 우리는 뭘 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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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경에선 사랑을 지극한 덕으로 삼고, 공경을 중요한 도리로 삼았다.
주역에서는 감응을 덕으로 삼고, 겸손을 도리로 삼았다.
노자에서는 무(無)를 덕으로 삼고, 허(虛)를 도리로 삼았다.
예기에서는 공경을 근본으로 삼았고,
악기에서는 사랑을 주인으로 삼았다.
그러므로 성정의 바탕에 사랑하고 공경하는 진실함이 있다면,
도덕과 한 몸이 되어 다른 사람 마음을 감동시켜,
도리가 통하지 않음이 없게 된다.
그러나 사랑함은 공경함보다 적어서는 안 된다.
그렇게 되면 청렴하고 절개 있는 자는 따르겠지만,
사람들 대부분은 함께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사랑을 받은 자는 죽기까지 할 것이다.
이는 무엇 때문인가?
공경함이 취하는 도리는 엄격하게 거리를 두는 데 있으니,
이런 형세는 오래 지속되기 어렵다.
사랑함의 도리는 친근하게 정을 주고 호의를 두텁게 베풀어, 깊어지면 남을 감동시키는 데 있다.
그러므로 사랑하고 공경하는 진실함을 관찰하면, 이로써 정이 통하고 막히는 이치를 알 수 있다.
출처: 유소의 '인물지'(소설 상권 261쪽 인용, 유소는 중국 조나라 때 인물)
Posted by ohnu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