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향수'를 일독했다.
1991년 1쇄, 95년 15쇄
95년 개역판 1쇄, 2000년 30쇄
2000년 신판 1쇄, 2006년 44쇄...
나보다 앞서 이 책을 읽은 분은 대략 500만명.
뭐 그런게 중요한 건 아니고.
저자에 대한 정보를 알고 싶었으나, 워낙 은둔형이어서 거의 자료가 없었다.
그의 아버지가 독일 신문의 편집인이었고, 저술가이자 소설가였다는 것 정도.
피를 물려받은 것 같은데, 언론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정확한 것을 알 수는 없고.
다만, 독일에서 중세과 근대역사를 공부했으며, 뮌헨에서 작업하고 있다는 정도.
이렇듯 숨어있다보니 여러 소문이 나도는데, 이런 신비함이 책 파는 데는 도움이 되는 것 같고.
본론으로 들어가서...




세계 각국에서 나온
다양한 버전의 '향수'
500만명의 독자들은 향수를 어떻게 읽었는지, 쭉 훑었는데...
눈에 썩 들어오는 해석은 없는 듯.
나는...이 책의 도입부를 읽으면서는 '나노공학을 소설에 응용한 것'같은 착각에 빠졌다.
"냄새는 분해하면 다시 창조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소설의 주인공 그루누이의 말 때문에.
분해하고 분해하면, 분해할 수 없는 원초적 입자를 만나게 되고,
이 입자를 조립할 수 있는 기계를 만들어내면 어떤 물건이든지 재창조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나노공학.
그러나, 소설의 중반부를 넘어 결말로 가면서, 탁월한 '정치 역사 소설'이란 생각이 들었다.
향수의 대가가 된 그루누이는 향수로 사람의 이성을 마비시킨다.
이 부분에서 향수는 마치 정치인의 대중연설 같은 느낌이다.
사람들이 맡고 싶은 향수를 들이마시면 마치 정원에 앉아 있는 착각을 불러일으키듯,
사람들이 듣고 싶은 말을 들으면 마치 자신이 꿈꾸던 이상세계에 있는 듯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면서 향수를 갖고 싶은 욕망이 꿈틀거린다.
그러면서 이상세계를 실현하고픈 욕망이 올라온다.
향수를 산다. 그 정치인을 찍는다.
향수에 취하지 않은 사람은 없다.
취하지 않는 사람만이 진실을 알 수 있을텐데. 모두 도취되고 만다.
우린 2002년 노무현에게 취했나?
미국민은 2004년 부시에게 취했나?
현재, 우리가 맡고 싶은 향수는, 발현하고픈 욕망은 무엇인가.
그걸 누가 채워주려고 하는가.
그는 왜 그걸 채워주려고 하는가.
거기에 흠뻑 취하면 우린 어떻게 되는가.
현재 향수를 뿌리고 있는 자들은 누구인가.
어느 향수가 가장 갖고 싶은가.
소설의 시대적 배경은 18세기 파리. 1789년 프랑스 시민혁명이 일어난 즈음의 이야기다.
그 시절, 혁명의 열기는 향수처럼 번져나갔고, 사람들은 흥분했다.
당시 사람들은 뭐에 홀렸는가. 이런 얘기를 저자는 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Posted by ohnu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