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3개월 동안 나는,
나를 잘 모르는 사람부터 잘 아는 사람까지 ‘나 하면 생각나는 책’을 한 권 사달라고 부탁했다.
나도 그들에게 한 권씩 사줬음은 물론이다.
그들은 나에게 책을 건네면서 갖가지 훌륭한 메시지를 남겼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나더러...
"끊임없이 돌고 있는 무한루프에서 빠져나올 물음표를 갖고 사는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받잡기 힘든 황공한 칭송이었다.
이를 통해 나는 내 주위 사람들이 나보다 더 많이 나에 대해 알고 있음을 확인했다.
나를 비춰주는 훌륭한 거울을 곁에 두고 있다는 생각에 나는 뿌듯했다.
그리고 그들 덕분에 나의 책장은 경계를 넘어설 수 있었다.
나라면 도저히 고를 수 없는 책들을 손에 넣은 것이다.
그것도 내 분신처럼 느껴지는 친근한 책들을 말이다.
그래서 나는 2007년 새해, 나에게 더욱 다가설 수 있는 계획을 세우게 됐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길.
(총 10권을 받았는데, 천유로세대는 이미 블로그에 공개했고,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향수와 딥심플리시티는 다음에 쓸 생각이다.)

이 책을 건네준 분은 "내가 알고 있던 것을 송두리 채 흔들어 놓은 책"이라고 소개했다. 나더러 그런 책을 썼으면 좋겠다면서. (함 해보지 뭐!)
그 분 아니었으면 귀중한 책을 놓칠 뻔 했다. 정말 고마웠다.
'발견자들'은 예나 지금이나 주류로부터 핍박을 받는다.
요즘 유전공학자들이 신의 영역을 침범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 듯,
망원경과 현미경이 발명된 시기에도 신의 영역을 침범한다는 이유로 조심스럽게 다뤄졌다. 그러나, 발견의 시대엔 다른 것이 있었으니...
단순 기술자도 뛰어난 발견이나 발명을 했을 경우, 왕립협회 회원이 될 수 있었다. 학벌과 가문을 따지지 않았다.
중국의 춘추전국 시대처럼 인재를 불러모았던 것이 당시 유럽이 중국을 넘어 발전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다.

아, 이 한마디를 남기면서 책을 건네준 그 분을 잊지 못할 것 같다.
미래라는 게 별 것 있나? 사람이, 그들의 욕망이 만드는 것이지...(쥑인다)
읽으면서 기억에 남던 말...
"운명을 만났다면 뭔가 묵직한 책임감 혹은 연민을 느껴야 한다." 가벼움과 무거움의 차이는 이런 걸 만났느냐, 아니냐의 차이다. 또 하나...
집시들은 우연이 주는 의미를 해독하려고 애쓴다. 워낙 우연속에서 살아서 그럴 것이다. 나는 이 구절을 읽으면서 전생이 있다면, 나는 집시였을 거란 상상을 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아내와의 관계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다. 아울러 사랑의 진정한 의미같은 것도. 예를 들면, 이런 의문이 들었다.
'피로 때문에 그녀의 가장 풍부한 부분을 흘려보낸 것은 아닌가?'
사랑은 상대의 미묘한 변화를 재빨리 알아차리는 것이다. 세심한 관심이 없다면 나는 그녀의 어떤 부분을 사랑한다는 말인가...뭐 이런 지적이 와 닿았다.
또 하나..."현재를 살지 못하는 이유는 내가 평생 갈망한 것이 이것이라는 깨달음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 블로그의 이름도 오늘.컴 아닌가!)
*언헤도니아라는 병: 행복을 읽을 지 모른다는 공포에서 나오는 두통(오, 예~)

한 줄은 올라가는 사람들, 또 다른 줄은 내려가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끊임없이 올라가고, 끊임없이 내려간다. 착시 효과 때문이다.
사람들은 앞 사람만 따라 끝도 없는 길을 걷는다. 앞사람이 어디로 가는지 아무도 묻지 않는다. 자신이 끊임없이 올라가는 것처럼 느끼겠지만, 위에서 보면 그게 그 자리다. 세상의 축소판이다.
이걸 주신 분은 나에게 '그 행렬에서 뭔가 의구심을 품고 물음을 던지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내가 들은 최고의 칭찬같다. 무한루프를 빠져나올 질문을 갖고 있는 자. 내가 과연?

위 그림을 선물한 분과 거의 비슷한 느낌을 주는 분이 이 책을 줬다.
'너무 재미있고 통쾌해서 악마도 웃어버렸다'는 의미에서 악마의 사전인데, 단어의 뜻을 필자의 시각에 따라 뒤틀어놓은 것. 예컨대...
성과(outcome): 실망의 독특한 유형. 한 가지 예외가 법칙을 증명한다고 여길 정도의 지능을 가진 사람들은, 어떤 행동이 현명한가 그렇지 않은가를 결과에 의해 평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는 불멸의 넌센스다. 어떤 행동이 지혜로웠는가 아닌가는 행동을 했을 때 주위가 얼마나 밝았는가로 평가해야 한다.
사이렌(Siren, 이 책을 준 분의 필명이기도 함): 음악천재. 비유적으로 목적을 숨기고 실망스러운 공연을 하는, 장래가 촉망되는 여성을 통칭한다.

지역을 선택할 때는 반드시 산수가 아름다운 곳을 택해야 한다. 강을 끼고 있는 산보다 시냇물을 끼고 있는 산이 낫다. 골짜기 입구엔 높은 암벽이 있고 조금 들어가면 환하게 열리면서 눈을 즐겁게 해주는 곳, 이런 곳이 좋다. 중앙의 판세가 맺힌 곳에 초가집 서너 간을 얽되, 나침반의 바늘이 정북과 정남을 향하도록 해서 정남향이어야 한다.
집 짓는 일은 극히 정교하게 해야 한다. 순창에서 나는 설화지로 벽을 바르고 문설주 위에는 담묵 산수화를 걸고, 문설주엔 고목이나 대나무, 바위를 그리거나 혹은 짧은 시를 쓰기도 한다.(캬~)
방안에는 책꽂이 두 개를 놓고 책 천삼사백 권을 꽂아 놓는다. 주역집해, 모시소, 삼례원위와 고서, 명화, 산경, 지리지, 역법, 의약에 대한 설명서, 군사훈련의 제도, 초목과 새와 물고기의 계보와 농정 수리에 관한 학설, 거문고 악보 등에 이르기까지 빠짐없이 갖춘다...(윽!)

김훈의 자전석 에세이. 제목 '밥벌이의 지겨움'에 나오는 한 토막.
이 세상의 근로감독관들아, 제발 인간을 향해서 열심히 일하라고 조져대지 말아 달라. 제발 이제는 좀 쉬라고 말해 달라. 이미 곤죽이 되도록 열심히 일했다. 나는 밥벌이를 지겨워하는 모든 사람들의 친구가 되고 싶다. 친구들아, 법벌이에는 아무 대책이 없다. 그러나 우리들의 목표는 끝끝내 밥벌이가 아니다. 이걸 잊지 말고 또다시 각자 핸드폰을 차고 거리로 나가서 꾸역꾸역 밥을 벌자. 무슨 도리가 있겠는가. 아무 도리 없다...
김훈은 아직 20년은 더 풀어낼 이야기 보따리가 있는 작가다.
Posted by ohnul


